[더팩트ㅣ이한림 기자] 투자자를 유인할 때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다가 유행이 지나면 시장에 방치되는 '좀비 ETF' 양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선 자산운용업권 전반에 퍼진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지목된다. 연내 상장폐지 대상이 될 수 있는 순자산 50억원 미만 ETF는 유가증권시장에 50개 이상(28일 종가 기준) 존재하고 있으며 자산운용사별로도 브랜드 규모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어서다.
상장폐지 위험 수위에 도달한 부실 상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ACE' 브랜드를 운용하는 한국투자신탁운용으로 11개에 달했다. 'RISE'로 리브랜딩한 지 2년째를 맞은 KB자산운용(10개)도 뒤를 바짝 쫓았다. 국내 ETF 시장 점유율 왕좌를 다투는 삼성자산운용(7개)과 미래에셋자산운용(5개) 역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대형사들마저 출시 후 방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증명했다.
시장에서는 이처럼 자산운용사들이 브랜드 경쟁과 점유율 싸움에만 몰두해 부실 상품을 솎아 내지 않는 와중에 투자자가 원하는 시점에 주식을 제값에 매매할 수 있도록 돕는 증권사 유동성 공급자(LP)들마저 제 역할을 외면해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량이 마른 부실 상품일수록 호가 스프레드(매수·매도 가격 차이)를 넓게 잡아 투자자에게 거래 비용을 고스란히 전가하거나, 사실상 유동성 공급 의무를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거래소 상장규정에 따르면 ETF LP는 투자자 보호와 적정 가격 형성을 위해 장중 매수나 매도 양방향에 각각 최소 100좌 이상 의무 호가를 상시 제출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의 거래량이 부족하더라도 LP가 펀드의 실제 가치에 가까운 매수·매도 호가를 지속적으로 대줘야만 시장이 정상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LP들이 규정상 허용된 최대치까지 호가 스프레드를 넓혀놓으면 투자자는 진입과 퇴로가 모두 막히게 된다. ETF의 가치 평가가 오르더라도 현재 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상품을 매수할 수 있고, 반대로 시장 전망이 어두워 당장 자금을 회수하려 할 때도 LP가 낮게 벌려놓은 불리한 매수 호가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매도해야 해 원금 손실이 가중된다. 이러한 구조적 불이익 때문에 신규 투자자의 발길마저 끊기면서 해당 상품은 좀비 ETF라는 오명을 벗기가 더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LP들의 부실한 호가 관리와 방치 행태는 단순한 시장의 의심을 넘어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다. <더팩트> 취재 결과, 한국거래소가 올해 2분기 금융투자업권에 통보한 LP 평가에 따르면 평가 대상 26개 증권사의 총점으로 평균을 계산한 결과 1분기 73.09점에서 2분기 68.93점으로 4.16점 낮아졌다. 총점이 하락한 증권사는 조사 대상의 대부분인 21곳에 달했다. 40점 만점인 '의무이행' 항목의 평균 점수도 같은 기간 37.31점에서 33.98점으로 3.33점 떨어졌다. 특히 전체 평균 총점 하락분의 약 80%는 호가 제출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항목에서 발생해 사태의 심각성을 더했다.
시장에서 좀비 ETF의 호가창은 사실상 무법지대나 다름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폭발적인 거래량으로 국내 증시 변동성 확대의 주범이 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관리하는 LP들마저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ETF 종목당 전담 인력이 1~6명으로 턱없이 부족하고, LP들이 호가 스프레드를 위반(31건)한 방치 시간이 평균 17.32분으로 집계됐는데 시장 소외까지 받은 좀비 ETF에 대한 LP들의 의무 이행은 오죽하겠냐는 목소리다.
금융당국도 LP의 호가 조정을 주시하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부터 ETF에 대한 LP의 종가 기준 괴리율을 국내 기초자산은 기존 3%에서 2%로, 해외 기초자산은 6%에서 5%로 낮춰 가격의 왜곡 허용 범위를 좁히는 형태로 관리 의무를 강화해 시행 중이다. 또 마이너스 괴리율도 절댓값을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명확히 규정해 LP들의 꼼수 차단에 나선 상태다.
이런 당국 조치가 시장에서 실효성을 거두려면 증권사 LP들의 체계 정비뿐만 아니라 상품을 출시해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의 적극적인 연계 모니터링과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힘을 싣는 배경이다. LP가 종가 단일가 매매 시간대의 가격 변동이나 해외 기초자산의 해지 부담으로 유동성 공급에 한계를 느낀다면 자산운용사 역시 괴리율이 반복적으로 확대되는 좀비 상품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함께 개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증권사 LP들이 겪는 이런 현실적인 한계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이것이 투자자들의 피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을 무겁게 인식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우선 LP를 보유한 증권업계는 현행 유동성 공급 시스템의 인과관계를 짚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실제 시장 구조를 들여다보면 LP가 호가 스프레드를 넓혀놓아서 좀비 ETF가 된 것이 아니라,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스프레드가 넓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거래량이 급격히 낮은 좀비 ETF라면 LP가 호가를 촘촘하게 대다가 기초자산 가격 변동 리스크를 온전히 떠안아야 하므로 방어적으로 스프레드를 벌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자산운용업권 역시 이런 증권사 LP들의 현실적인 리스크와 한계점에 공감하는 기류가 흐른다. ETF나 하우스 규모별로 관리해야 하는 LP 숫자가 다르고, LP 입장에서도 거래량이 부족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는 시장 구조를 잘 인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증권사 LP들과 연계해 거래량이 낮은 상품의 개선 방안을 강구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면서도 "하우스나 상품 규모에 따라 참여하는 LP 숫자가 다르고 LP 입장에서도 거래량이 많아야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운용사 내에서 해당 상품의 중요도가 높다고 판단될 경우, 증권사와 협의해 LP를 추가로 매칭하거나 관리 체계에 힘을 싣는 등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