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손원태 기자] "일상의 물건이 시대를 기록하고, 디자인의 영감이 됩니다."
서영희 이랜드뮤지엄 총괄디렉터가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랜드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기네스 세계 기록 공식 인증식'에 대해 밝힌 소회다. 이랜드그룹은 이날 여행 가방 7816점과 북엔드 4674점의 소장품을 토대로 기네스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 컬렉션' 공식 인증을 획득했다.
이랜드그룹은 지난 1995년부터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 각지의 가치 있는 소장품을 수집해 왔다. 현재까지 패션, 음악, 영화, 스포츠,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집한 소장품만 100만 점이 넘는다.
패션으로 출발한 기업인 만큼, 이랜드그룹은 이러한 소장품을 새로운 디자인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내부 직원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비밀 수장고를 미디어에 최초 공개한 배경이다.
서영희 디렉터는 "100만 점의 소장품이 보존된 이랜드뮤지엄 아카이브를 처음으로 공개하게 돼 매우 뜻깊다"며 "이랜드글로벌R&D센터에 녹아든 이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가 되도록 조성했으며, 앞으로 최대 30개 부문의 기네스 세계 기록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 북엔드·여행 가방 기네스북에…마릴린 먼로 드레스도 눈길
이랜드뮤지엄은 이랜드글로벌R&D센터 내 지하 1층과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수장고로 향하는 길목인 1층 로비에는 마르크 샤갈의 걸작 '평화'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은 1961년 콩고 평화 임무 중 순직한 다그 함마르셸드 전 UN 사무총장과 15명의 수행원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스테인드글라스 대작 '평화의 창'에 뿌리를 둔다.
국내 최초로 전시되는 이 태피스트리 작품은 회화와 섬유 기술이 융합된 거장들의 예술 세계를 투영한다. 여기에는 이 같은 명작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소비자와 예술적 통찰 및 혁신의 영감을 공유하겠다는 이랜드그룹의 의지도 담겼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기네스 인증을 받은 방대한 북엔드 컬렉션이 진열장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책을 받치는 도구에 불과했던 북엔드들이 각종 동물과 정교한 조각상 등 다채로운 형상으로 독특한 자태를 뽐냈다.
타자기 컬렉션에는 15개 브랜드에서 생산된 1100여점의 타자기가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고정식부터 휴대용 타자기에 이르기까지 기술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며, 특히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실제 사용했던 타자기도 전시돼 시선을 모았다.
패션의 역사를 압축해 놓은 듯한 재봉틀 컬렉션 역시 진풍경이었다. 이랜드뮤지엄은 재봉틀뿐만 아니라 당시의 재봉틀 가방까지 함께 전시했다. 옷 한 벌이 탄생하던 역사적 순간들을 기록한 것이다.
지하 2층으로 들어서면 초대형 드레스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온갖 의상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이곳에 보관된 넥타이만 3만여 종이 넘으며, 전체 의류 샘플은 30만 점에 달한다. 방대한 소장품들은 스파오나 미쏘 등 이랜드그룹 대표 패션 브랜드의 제품 디자인에 응용된다.
기네스 인증을 받은 여행 가방 컬렉션은 마차에서 자동차로 이어지는 교통수단의 진화 과정을 가방으로 보여준다. 시대별 자동차의 특성에 맞춰 여행 가방의 형태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직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그 외 샤넬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소장했던 서적을 비롯해 마릴린 먼로가 영화 촬영 당시 입었던 드레스, 영화 '십계'와 '스타워즈' 제작에 사용된 특수효과 카메라 등이 전시돼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한우석 이랜드뮤지엄 대표는 "오랫동안 수집해 온 소장품을 전시에 활용할 뿐 아니라 이랜드이츠의 애슐리퀸즈와 같은 브랜드 사업에서 시너지도 창출하고 있다"며 "수장고에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영 당시의 포스터와 배우들의 실제 의상도 전시돼 있고, 애슐리퀸즈의 스토리텔링도 영화 속 여주인공을 본 따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해외로도 전시 펼치는 이랜드뮤지엄…"외부 고객에 개방"
이랜드뮤지엄은 최근 3년간 소장품을 활용해 20차례 이상 전시를 기획했고, 누적 관람객 수는 110만명을 돌파했다. 패션에 대한 전문 지식 없이 누구나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 속에 담긴 문화적 메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대표적으로 2024년 5월에는 서울디자인재단과 'RSVP: 위대한 유산으로의 초대' 전시를, 7월에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퀸즈컬렉션'을 개최하는 등 콘셉트별 전시를 이어왔다. 특히 퀸즈컬렉션에서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생전에 입었던 무도회 드레스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결혼식 때 착용했던 웨딩 베일 등이 공개돼 패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영감을 안겼다.
해외 역진출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2017년에는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소유했던 여행용 트렁크, 슈트케이스, 화장대 케이스, 도빌백 등 4종이 루이비통 전시에 활용됐다. 2022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에서 열린 영화 '대부' 50주년 기념전에 참여해 배우 로버트 드 니로, 다이안 키튼 등이 입었던 의상을 대여했다.
소장품은 전시를 넘어 호텔, 외식 등 이랜드그룹의 다양한 실질 비즈니스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켄싱턴호텔 평창에는 약 200점의 올림픽 관련 소장품이 진열돼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이 이를 보고 베이스캠프로 선정했을 정도다. 이곳에는 피겨스타 김연아의 스케이트와 마이클 펠프스의 수영모 등이 전시돼 있다.
한우석 대표는 "소장품 수집을 본격화한 1995년 당시 선진국 사례를 분석한 결과,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문화 콘텐츠 소비가 활성화된다는 점을 발견했다"며 "30년 후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을 때 문화예술에 대한 고객들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수집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장품은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영감을 얻는 과정에서 든든한 뿌리와 원천이 되어주며, 창의적인 디자인을 펼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다"며 "이러한 컬렉션을 외부 고객들에게도 전시를 통해 개방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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