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파주=이성락 기자] 자유로를 따라 파주 방면으로 이동하다 보면 이북 도민들의 망향(望鄕) 한을 달래기 위해 조성된 동화경모공원이 나온다. 장묘시설로 활용되는 이 공원의 주변은 한강 하류와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지역적 특징으로 유명하다. 공원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면 빼어난 경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여기는 '보통사람'을 표방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동화경모공원 최상단이다.
'보통사람'의 묘는 아니었다. 기일(26일)을 앞두고 지난 13일 찾은 파주 탄현면 동화경모공원 내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무려 550평(1810㎡)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했다. 2~3평 남짓의 다른 분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피라미드형 계단과 잔디 광장이 별도로 조성됐고, 노 전 대통령의 묘임을 확인할 수 있는 안내판과 표시석도 자리 잡고 있었다. 묘지 앞에는 '각하 가을이 왔습니다', '소영·재헌, 아빠 사랑해요'라고 적힌 화환이 놓여 있었다.
◆ 자격 없이 안장…특혜 논란은 계속
보통사람이었다면 이러한 '호화 묘역'을 조성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노 전 대통령 일가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서울 국립현충원에 있는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과 대전 국립현충원에 잠든 최규하 전 대통령의 묘역을 모두 합친 면적(약 510평)보다 더 크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사회 지도층을 겨냥해 범정부 차원의 호화·불법 분묘 정비 작업을 전개했으나, 정작 자신의 묘는 단속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조성 당시부터 특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내란죄로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돼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없었고, 장사법에 따라 묘지가 9평 이내로 제한되는 상황이었으나, 유족들이 '국가 보존 묘지'를 신청해 규제를 우회했다는 비판이다. 유족들은 일반 묘보다 튀거나 면적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평범하게 조성하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않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파주에 특별한 연고가 없어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파주 일부 지역을 관할하는 육군 9사단장을 지냈지만 12·12 군사반란 당시 북한과 대치 중인 전방 병력을 빼 가담하는 등 오히려 파주에 안보 피해를 입힌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그 밖에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특혜 조항에 따라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됐고, 지금의 호화 묘역이 만들어지게 됐다. 앞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러한 특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지금은 잠잠해진 모습이다.
◆ "묘역 사용료·관리비, 국가 지원 없어"
묘역 조성 과정에서의 특혜 뿐만 아니라 유지 비용도 문제다. 3평 기준 묘지 사용료는 400만원(15년마다 납부), 관리비는 37만4000원(5년마다 납부)으로, 이를 단순히 계산하면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15년치 사용료 7억원이 넘는다. 5년치 관리비도 7000만원에 가깝다. 국가원수 묘역 관리비가 통상 1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노 전 대통령의 묘역 관리비의 경우 연간 5억원 이상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동화경모공원 측은 노 전 대통령 묘역의 구체적인 사용료·관리비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일가는 묘역과 관련한 비용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해당 묘역 사용·관리에 국민 세금이 쓰이고 있다는 의심이 생겨나기도 했다. 다만 혈세가 낭비되진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보건복지부는 "노 전 대통령 묘역 조성 비용, 사용료와 관리비에 대한 국가의 지원 내역이 전혀 없다"며 "유족이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 막대한 사용료·관리비 어디서 나오나
모든 비용을 유족들이 부담하더라도 문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의혹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호화 묘역 사용·관리비와 같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건은 출처에 대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 일가는 추징금 납부의 사례가 있으며,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평생 주부로 지내는 등 소득 활동을 하지 않았다.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또한 공익재단의 성격상 호화 묘역을 조성 및 유지할 정도로 연봉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앞서 2024년 국정감사를 통해 김 여사가 아들 노재헌 주중대사가 운영에 참여한 재단에 152억원의 거액을 후원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지난달까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숨겨둔 비자금 등 출처가 불분명한 뭉칫돈에 대해 수사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수사 지속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추후 비자금 의혹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가 나서 비자금 의혹을 밝히기 전까지 막대한 묘역 관리 비용의 출처 또한 뚜렷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 주중대사가 상임이사로 있는 '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 측은 묘역 사용·관리 비용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묻자 "죄송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자금 출처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동아시아문화센터, 아트센터 나비 측과도 연락을 시도했으나 노 주중대사, 노 관장 측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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