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해 복구비 '눈덩이'…기후보험 '보상' 넘어 '예방' 역할 필요


재난 복구비, 직접 피해액의 최대 3.2배…정부 재정부담 확대
방재투자 보험료 반영·지수형 보험 확대…정부·보험 역할분담 필요

기후변화로 자연재해 빈도와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기후보험의 역할도 사전 예방과 위험관리 영역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경상남도 거제시 장평초등학교 입구에 침수된 가구들이 놓여 있는 모습. /송호영 기자

[더팩트 | 김태환 기자] 기후변화로 자연재해의 빈도와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사고 발생 이후 보험금을 지급하는 기존 기후보험의 역할도 사전 예방과 위험관리 영역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차수판 설치와 내진보강 등 재해 예방 노력을 보험료 할인에 반영하고, 실제 재산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폭염·강수량 등 일정 지표를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 보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3일 보험연구원이 개최한 '기후위기 시대, 자연재해 위험관리와 기후보험' 세미나에서는 기후재해에 따른 보장공백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보험산업 간 역할분담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김헌수 보험연구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국내에서 농작물재해보험을 비롯해 여러 정책성 보험이 도입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험료 지원도 확대됐지만 여전히 자연재해로 발생하는 손실 상당 부분이 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프로텍션 갭'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특히 2025년 산불 피해액이 1조원을 넘어선 데다 실제 복구비용이 직접 피해금액을 웃도는 등 재해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의 재해복구 기능을 보완하는 보험산업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남경훈 한국화재보험협회 박사는 최근 대형 자연재해의 유형이 지진과 산사태, 대설, 산불, 집중호우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단일 재난 중심의 대응체계에서 벗어나 복합재난을 함께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10년간 자연재해로 발생한 재산피해 약 4조7000억원 가운데 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약 83%를 차지했다. 그러나 2024년에는 대설이 주요 피해원인으로 부상하는 등 재난 유형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자연재해 이후 투입되는 복구비가 직접 재산피해 규모를 크게 웃도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주요 재난 사례를 분석한 결과 복구비는 재산피해액의 약 1.7~3.2배 수준에 달했다. 2024년에는 복구비 약 1조2000억원 가운데 83%가 국비와 지방비 등 공공재정으로 부담됐다.

남 박사는 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손실이 단순히 개인의 미가입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재해 손실이 보험으로 이전되지 않으면 가계와 기업, 지방자치단체와 정부를 거쳐 금융시스템으로까지 전가될 수 있는 만큼 보장공백을 국가 차원의 재정·금융 위험관리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자연재해의 피해 규모와 보험 가입률이 지역별로 일치하지 않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시군구 단위로 재해위험이 높지만 보험가입률이 낮은 지역을 찾아 정부의 보험료 지원을 우선 배분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보험의 역할을 사후 보상에서 사전 예방까지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 차수판 설치나 내진보강, 방재설비 구축 등으로 실제 재해 위험을 낮추더라도 이러한 예방투자 효과가 보험료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남 박사는 예방조치에 따른 손실 저감 효과를 측정·검증해 보험료 할인과 보험 인수조건, 재보험 조건 등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방재활동과 내진성능 등을 보험료에 반영하는 제도가 활용되고 있다. 남 박사는 국내에서도 정부와 보험업계의 방재시설·안전점검 결과를 보험요율과 연계하는 이른바 '예방의 가격화'를 통해 가입자의 재해예방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발표를 맡은 한진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실손형 보험이 보장하기 어려운 기후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지수형 보험'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실손형 보험은 재해 발생 이후 실제 손실 규모를 산정해 보험금을 지급한다. 정확한 손해 보상이 가능하지만 손해사정에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지수형 보험은 실제 손해액을 일일이 산정하지 않고 기온이나 강수량, 하천수위 등 사전에 정한 지표가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약정된 보험금을 지급한다. 실제 손실과 보험금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지만 보험금 지급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직접적인 시설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손실이 나타나는 사례가 늘면서 지수형 보험의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통시장은 폭우나 폭염으로 시설물이 파손되지 않더라도 방문객 감소로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 풍력발전 역시 설비가 고장 나지 않아도 바람이 부족하면 발전량과 매출이 감소한다. 이처럼 기존 재산보험으로 보상하기 어려운 손실을 기온과 강수량, 풍속 등 지표를 활용한 보험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는 경기도가 모든 도민을 대상으로 기후보험을 운영하고 있으며, 제주도는 건설현장 일용근로자 등 야외노동자를 대상으로 폭염 관련 지수형 보험을 도입했다. 민간에서는 기온과 강수량 등에 따른 전통시장 매출감소 위험을 보장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한 연구위원은 해외에서는 기후보험의 적용 대상과 지표가 국내보다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소득이나 거주지역, 종사업종 등을 기준으로 기후취약계층을 선정하고, 운송·건설·재생에너지·레저 등 날씨에 민감한 다양한 업종을 대상으로 보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보험금 지급 기준도 기온과 강수량뿐 아니라 하천수위와 침수면적, 토양수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를 위해 위성과 드론, 항공영상,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을 통한 관측기술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위험분석 역량도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와 보험산업 간 역할분담도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기후위험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기상과 재난, 위성 등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정보 상당 부분을 정부가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데이터를 보험산업에 제공하고 보험사는 이를 토대로 위험평가와 상품개발, 손해사정 등을 고도화하는 협력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후위험에 대해서는 정부가 초기 시장 형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손해율이나 위험정보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민간 보험사가 곧바로 위험을 인수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시범사업 등을 통해 초기 위험을 일부 부담하고, 관련 데이터와 경험이 축적된 이후 민간 보험시장으로 위험을 이전하는 방식이다.

한 연구위원은 위험 저감 측면에서도 정부가 방재 인프라와 침수·산불 위험지도 등을 구축하고 보험사는 가입자의 예방 노력을 보험료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위험을 저감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보험료를 할인하는 방식으로 보험산업도 기후위험 예방과 피해 규모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정부의 데이터 제공과 초기 위험분담, 보험업계의 위험평가와 상품개발이 연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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