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의 비만치료제가 체중 감량을 넘어 노화 관련 질환을 관리하고 건강 수명을 늘리는 차세대 항노화 치료제로 진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심혈관·신장·간 질환에 이어 신경퇴행성 질환까지 연구 범위가 넓어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GLP-1 약물이 노화 과정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도 시작됐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바이오협회는 지난달 29일 'GLP-1 계열 약물의 진화 : 안티에이징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GLP-1 계열 약물이 당뇨병과 비만 치료를 넘어 노화 관련 질환의 예방·관리와 건강수명 연장을 위한 치료 전략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언급한다. 글로벌 학술지 네이처(Nature)도 지난달 세마글루타이드의 항노화 가능성을 확인한 동물실험 결과를 게재하며 GLP-1 계열 약물이 노화 진행을 늦출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GLP-1은 췌장과 뇌 등 전신 조직에 분포한 GLP-1 수용체에 작용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이다. 대표적인 GLP-1 계열 약물인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는 3상 임상에서 68주간 평균 14.9%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고, 일라이 일리의 마운자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는 72조간 평균 20.9%의 체중 감소를 나타냈다. GLP-1 약물은 원래 제2형 당뇨병과 비만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임상 과정에서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며 비만치료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GLP-1은 최근 대규모 임상 및 과학적 연구가 축적되면서 전신 노화 합병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세마글루타이드의 대규모 심혈관 임상(SELECT)에서는 주요 심혈관 사건(MACE) 위험이 14% 감소했고, 전체 사망 위험도 1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대 체중 감량에 도달하기 전부터 심혈관계 개선 효과가 나타나, 체중 감소와 독립된 혈관 보호 기전이 관여한다는 분석이다.
세포 및 동물 연구에서는 항산화 작용과 더불어 직접적인 항노화 가능성도 관찰됐다. GLP-1 약물이 활성산소종(ROS)을 줄이고 항산화 관련 경로를 활성화 하거나, 손상된 단백질과 세포 소기관을 제거하는 '자가포식(Autophagy)' 촉진 기능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간세포 지방독성을 완화하고,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 축적을 억제하는 등 신경퇴행성 질환 개선 가능성도 보고됐다.
최근에는 실제 수명에 미치는 영향도 동물실험에서 확인됐다. 네이처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인간 기준 약 60세에 해당하는 20개월령 건강한 암컷 쥐에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결과, 평균 수명이 834일로 대조군의 742일보다 약 12% 길었다. 운동협응력과 근육 기능, 당 대사 능력에서도 투여군이 상대적으로 나은 결과를 보였으며 노화와 관련된 염증 등 세포·분자 수준의 변화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 대상 임상시험도 시작됐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갤버스턴 의과대학은 55~70세 성인 90명을 대상으로 티르제파타이드의 생물학적 노화 지연 효과를 검증하는 임상 2상 '무디 장수 임상시험'을 착수해 진행 중이다. 임상에서는 염증, 대사기능, 신체 기능 등 노화 관련 지표와 건강수명 지표가 주요 평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상시험은 올해 2월에 시작됐으며 2028년 1월 종료될 예정이다.
다만 GLP-1 약물을 '항노화제'로 규정하기에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다. 세포 및 동물 연구 결과가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어서다. 세마글루타이드의 노화 지연 효과가 GLP-1의 직접적인 세포 보호 작용에 따른 것인지, 체중 감소와 칼로리 섭취 감소에서 비롯된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실제로 노보 노디스크가 진행한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대상 임상에서는 실제 병의 진행을 유의미하게 늦추지 못했다. 또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노화를 독립적인 '질병 적응증'으로 인정하지 않는 규제적 한계도 존재한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실제 노화 관련 적응증에서의 임상적 활용과 인구 수준의 건강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여전히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면서도 "향후 GLP-1 계열 약물의 장기적인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고 노화 관련 바이오마커(생체지표) 및 건강수명 지표와의 연관성이 구체화할 경우, GLP-1은 기존 당뇨·비만 치료제를 넘어 노화 관련 질환의 예방·관리 및 건강수명 연장을 위한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GLP-1의 적응증 확대도 항노화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요소다. 비만과 당뇨병에서 출발한 GLP-1 계열 약물이 심혈관·신장·간 질환은 물론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까지 연구 영역을 넓히면서 '대사질환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내 기업들도 나섰다. 한미약품은 비만 치료 프로젝트 'H.O.P'를 통해 차세대 비만 치료 후보물질(HM17321)을 개발 중이며, 이 물질은 노화에 따른 근감소증 모델에서 근력을 높이는 효과를 확인했다. 유한양행, 동아에스티, 일동제약 등도 GLP-1 기반 작용제를 비만뿐만 아니라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 등 다양한 노화 연관 대사질환 치료제로 확대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NLRP3 억제제, cGAS-STING 억제제, 아펠린(Apelin), IL-11 억제제 등 '포스트 GLP-1' 차세대 항노화 타깃 선점 경쟁도 가열되는 추세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도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개발을 중심으로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근감소증, 심혈관질환, 신장 질환, 신경퇴행성 질환 등 노화 연관 질환을 대상으로 적용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적응증과 노화 관련 임상적 이점을 확인하고, 이를 신속하게 연구개발과 사업화로 연결할 전문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