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몰랐어도 책임 있다"…황창규·구현모 전 KT 경영진, 첫 배상 판결


황창규 4억5976만원·구현모 8828만원 배상 명령
감시 체계 방치, 경영자로서의 임무 불이행 판단

황창규(사진) 전 KT 회장과 구현모 전 KT 대표가 쪼개기 후원 관련 주주대표소송 파기환송심에서 KT에 각각 4억5976만원과 8828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더팩트 DB

[더팩트|우지수 기자] 회삿돈으로 만든 비자금의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과 관련해 황창규 전 KT 회장과 구현모 전 KT 대표가 KT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두 사람이 비자금 조성에 직접 관여했는지와 무관하게 감시·관리 체계를 갖추지 않은 것 자체를 책임 사유로 봤다.

16일 수원고법 민사11부(배준현 법원장)는 KT 소액주주 박모씨 등 35명이 두 사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황 전 회장에게 4억5976만987원을, 구 전 대표에게는 이 가운데 8828만4160원을 황 전 회장과 연대해 KT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주주대표소송인 만큼 배상금은 소송을 낸 주주가 아니라 KT로 들어간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이사로 재직한 기간에 조성된 부외자금과 정치자금 송금액을 손해 산정 기준으로 삼았다. 황 전 회장은 약 11억원, 구 전 대표는 약 4억원이다. 정치자금으로 송금되지 않은 부외자금도 전반적인 감시·관리 체계를 갖추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보고 손해에 포함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KT에 부과한 제재금 75억원 가운데 황 전 회장 약 6억원, 구 전 대표 2억4000만원 부분도 재직 기간에 상응하는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가 산정한 손해액보다 배상액이 작게 나온 건 산정 방식 때문이다. 재판부는 회사에 반환된 금액을 뺀 뒤 상법에 따라 책임 비율을 30%로 제한했다. 소액주주들이 낸 청구액은 765억원이었다.

사건은 KT 대외협력(CR)부문 임직원들이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상품권을 사들인 뒤 되파는 방식으로 부외자금을 만들고 이 가운데 일부를 국회의원 후원계좌에 나눠 보낸 데서 비롯됐다. 구 전 대표는 2016년 9월 본인 명의로 국회의원 13명에게 1400만원을 보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700만원이 확정됐다.

황 전 회장은 2014년 1월 KT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돼 2017년 연임에 성공한 뒤 2020년 3월까지 재직했다. 민영화 이후 연임 임기를 채운 유일한 KT 최고경영자다. 구 전 대표는 1987년 KT에 입사한 내부 출신으로 황 전 회장 취임 직후 비서실장 부사장을 맡았고 2020년 3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2023년 3월까지 일했다.

소액주주들은 지난 2019년 3월 KT에 전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내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가 응하지 않자 직접 소송을 냈다. 1심은 두 사람의 법령 위반이나 임무 해태를 특정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2심은 쪼개기 후원에 쓰인 돈이 대부분 회사로 돌아왔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지난 1월 부외자금 조성 자체가 임무 해태에 해당한다며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고로 참여한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선고 직후 "파기환송 취지에 맞게 판단한 건 맞지만 책임 부분이 경미하다"며 "KT 주주대표소송에서 이사의 책임이 구체적인 금액으로 인정된 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황 전 회장과 구 전 대표가 재상고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판결로 KT 전직 경영진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처음으로 구체적인 배상액이 나왔다. 소액주주들은 2022년 9월 황 전 회장과 구 전 대표 등 전·현직 임원 8명을 상대로 세 번째 소송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냈다. 2015~2017년 공공분야 전용회선 입찰담합과 단말기유통법 반복 위반, 2021년 통신망 장애를 문제 삼아 572억8300만원을 청구한 사건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최고경영자가 실행 사실을 몰랐다는 해명만으로는 책임을 벗기 어려워졌다는 시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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