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커지는 몸집에도 짙은 '이정훈 그림자'…조직 쇄신·전문경영 시험대


송치형·박현주·차명훈은 전면에…빗썸은 여전한 '이정훈 그림자'
몸집 키운 빗썸, 다음 과제는 조직 쇄신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창업주와 대주주를 중심으로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빗썸은 주요 경영진을 중심으로 이정훈(오른쪽 위) 전 빗썸홀딩스 의장과의 연결고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팩트DB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창업주와 대주주를 중심으로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빗썸은 여전히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 의장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사들이 창업주가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서거나 대형 금융·플랫폼 기업의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 전략을 구체화하는 것과 달리 빗썸은 주요 경영진 곳곳에서 이 전 의장과의 연결고리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특히 빗썸이 오는 2028년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내부통제 강화와 사업구조 개편에 나선 상황에서 과거부터 이어진 인적 네트워크와 조직문화를 얼마나 전문적인 경영체계로 전환하느냐가 향후 성장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11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빗썸의 지주사 빗썸홀딩스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김기범 전 빗썸 대외협력총괄 사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빗썸홀딩스는 빗썸 지분 73%가량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동안 이재원 빗썸 대표가 빗썸홀딩스 대표까지 겸직해왔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김 대표가 지주사 차원의 대내외 소통과 준법 경영을 맡고 이 대표는 거래소 경영에 집중하는 체제로 역할을 분리했다. 가상자산 2단계 입법 등 규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IPO를 앞두고 지주사와 거래소의 역할을 명확하게 나누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다만 새롭게 지주사 수장을 맡은 김 대표 역시 이 전 의장과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온 인물이다.

김 대표와 이 전 의장의 인연은 2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 대표가 2008년부터 약 10년간 근무한 아이엠아이는 이 전 의장이 창업한 회사로 게임 아이템 거래 플랫폼 '아이템매니아'를 운영했다. 이후 이 전 의장이 빗썸 지배구조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2017년 김 대표도 빗썸 대외협력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과거 지분 관계도 있다. 김 대표가 2019년 주주로 이름을 올렸던 SG브레인테크놀로지는 당시 빗썸 인수를 추진했던 싱가포르 법인 BTHMB홀딩스의 최대주주였다. 김 대표가 이정아 빗썸 부사장 등과 함께 이 전 의장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배경이다.

기존 경영진도 이 전 의장과 인연이 깊다. 이재원 대표 역시 2007년 아이템매니아에서 이 전 의장과 인연을 맺은 뒤 오랜 기간 함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 전 의장이 현재 빗썸이나 빗썸홀딩스의 대표이사로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음에도 핵심 경영진의 인적 구성을 따라가면 이 전 의장과의 연결고리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셈이다.

◆ 송치형·박현주·차명훈은 전면으로…빗썸만 '보이지 않는 오너'

이 같은 모습은 경쟁 거래소들의 최근 행보와 대조된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송치형 회장은 과거 '은둔의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외부 활동이 많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직접 대외 행보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네이버와의 결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공동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직접 미래 전략을 설명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나무는 네이버파이낸셜과 포괄적 주식교환을 추진하며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를 넘어 결제·커머스·스테이블코인·실물연계자산(RWA) 등을 아우르는 디지털 금융 플랫폼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과 삼성그룹 계열사, 한화투자증권 등 전통 금융회사와 대기업 자본까지 주요 주주로 합류하면서 사업 확장을 위한 우군도 확보했다. 송 회장 역시 직접 전면에 나서 네이버와의 결합 이후 성장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엑스(옛 코빗)도 미래에셋그룹이라는 강력한 뒷배를 확보하면서 시장 판도 변화의 변수로 떠올랐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최근 디지털엑스 임직원 행사에 직접 참석해 500억원 규모 증자에 이어 향후 전략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2000억~3000억원 규모의 추가 증자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룹 고객자산 1500조원을 기반으로 디지털자산 부문을 150조원 규모로 성장시키고 2027년 흑자를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미래에셋의 자본력과 전통 금융 노하우를 결합해 RWA와 토큰증권(STO),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코인원 역시 창업주 차명훈 대표를 중심으로 경영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차 대표가 단독 경영 체제로 복귀해 직접 지휘봉을 잡으면서 기술 조직 강화와 시장 점유율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비트엔 송치형, 디지털엑스엔 박현주, 코인원엔 차명훈이라는 책임과 전략의 중심축이 시장에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빗썸은 이 전 의장이 경영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요 인사에서 이 전 의장과의 연결고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책임경영의 주체는 상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반면 과거 오너의 영향력을 둘러싼 시선은 계속되는 구조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디지털엑스 임직원 초청 행사에 참석해 미래에셋그룹의 중장기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디지털엑스

◆ "시장보다 윗선 의중 살펴"…조직 내부에도 남은 그림자

문제는 이 같은 인적 구조가 조직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산업은 규제와 기술,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중심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경쟁력과 직결된다. 하지만 빗썸 내부에서는 시장과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는 것보다 주요 의사결정권자의 의중이나 내부 관계를 살피는 데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는 분위기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빗썸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조직 내부에서는 여전히 이정훈 전 의장의 의중을 의식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안다"며 "가상자산 시장이나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쌓고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보다 내부 관계나 의사결정권자의 눈치를 살피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경쟁 거래소들이 창업자나 대주주를 중심으로 책임과 의사결정 구조를 명확하게 가져가는 것과 달리 빗썸은 이 전 의장이 경영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조직 내부에서는 그의 영향력을 계속 의식한다는 점이 문제"라며 "결국 이런 조직문화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경쟁 무대가 단순 거래소 점유율에서 스테이블코인과 RWA, STO, 기관투자자 시장 등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조직의 전문성과 의사결정 속도는 중요해지고 있다. 자본력뿐 아니라 전문인력과 실행력이 향후 거래소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만큼 내부 관계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고착될 경우 중장기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2028년 IPO 선언…'이정훈의 빗썸' 넘어설까

빗썸은 최근 2028년 IPO 완료를 목표로 한 단계별 상장 로드맵을 공개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내부통제 고도화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전환 준비를 마친 뒤 내년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고 2028년 IPO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사업구조를 단순화하고 거래 수수료에 집중된 수익구조를 다변화해 상장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상장까지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금융당국 제재와 관련 소송이 이어지고 있고 올해 발생한 대규모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를 둘러싼 내부통제 문제도 남아 있다. 여기에 이 전 의장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인적 네트워크 역시 IPO 과정에서 시장이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경쟁이 단순 거래량과 점유율 싸움에서 금융·플랫폼 기업과의 결합 및 신사업 경쟁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는 점은 빗썸에 부담이다.

두나무는 네이버와 손잡고 송 회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엑스는 미래에셋의 자본력과 박 회장의 지원 아래 시장 공략을 시작했고 코인원 역시 차 대표를 중심으로 책임경영과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빗썸 역시 공격적인 마케팅과 수수료 정책 등을 앞세워 국내 2위 거래소로 몸집을 키웠지만 다음 성장 단계에서는 거래량과 점유율 확대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빗썸이 2028년 IPO를 넘어 종합 디지털자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형 성장만큼이나 '누가 어떤 원칙으로 회사를 움직이는가'를 시장에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전 의장이 경영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핵심 인사와 조직문화에서 그의 존재가 계속 거론되는 현재의 구조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느냐가 빗썸의 다음 성장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빗썸 관계자는 김기범 대표 선임과 관련해 "김기범 신임 대표는 빗썸홀딩스의 대내외 소통 및 준법 경영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이재원 대표는 빗썸 경영에 온전히 집중하고 가상자산 규제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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