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다영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자주포를 앞세워 미국과 스페인 시장을 잇달아 확보하면서 기존 북·동유럽 중심이던 수출 전선을 북미와 서유럽으로 확장하고 있다.
1일 업계 등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31일 스페인 방산기업 인드라시스템즈와 K9 자주포 등의 수출 실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금액과 물량, 기간은 경영상 비밀 유지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난해 연결 매출(약 26조7029억원) 기준 단일판매·공급계약 공시 기준(매출 2.5% 이상)을 적용하면 최소 6600억~6675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K9 미국 수출 소식도 전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9일 미 육군에 K9 기반 차륜형 자주포(K9MH)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이 계약은 우선 6문 발주에 이어 향후 4년간 최대 12문을 추가 발주할 수 있는 옵션을 포함하며, 전체 계약 규모는 약 2억6200만달러(약 3700억원)로 집계된다.
이번 스페인 계약은 K9의 첫 서유럽 진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01년 터키 수출을 시작으로 폴란드·핀란드 등 북·동유럽을 중심으로 확대해 온 K9은 스페인을 11번째 운용국으로 추가하게 됐다. 방산 전통 강호인 서유럽 시장에서 K9 플랫폼의 신뢰도와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스페인 육군 현대화 사업은 약 72억유로(약 11조5000억원) 규모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K9 기반으로 자주포 128대와 탄약운반차 120대 등을 공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인드라는 지난 3월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으며, 이번 실행 계약은 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K9 자주포의 핵심 특징 중 하나는 '쏘고 도망가기(Shoot & Scoot)' 전술에 최적화된 기동성이다. K9은 정지 상태에서 첫 발 사격까지 30초, 기동 중에는 60초 내 사격 준비가 가능하며, 사격 임무 완료 후 30초 이내에 새 위치로 이동할 수 있어 적의 역포격에 대한 생존성이 높다.
K9은 1000마력 디젤엔진을 탑재해 도로에서 최대 시속 67km로 주행할 수 있으며, 유기압 현수장치를 적용해 거친 지형에서도 안정적으로 이동한다. 현대 전장에서 드론·대포병 역타격 위협이 커지면서 '빠르게 쏘고 빠르게 이동'하는 능력이 중요해진 점도 K9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미 수출의 경우, 6·25전쟁 당시 미국의 포병 지원으로 나라를 지켰던 한국이 70여 년 만에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에 K9 자주포를 수출하는 '완성형 무기 수출국'으로 도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K9의 대미 수출은 한미 동맹의 안보·산업 협력 구조를 '원조 수혜국→동등한 방산 파트너'로 재정의하는 상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출 특징은 '완제품 수출'에서 '현지화 기반 플랫폼 수출'로 진화한 점이다. 스페인 사업은 인드라가 현지 생산과 체계 통합을 맡는 '스페인형 자주포' 방식으로 추진되는 만큼, K9 차체·핵심기술을 토대로 현지 산업협력과 유지·보수(MRO), 탄약운반차·지휘통제체계 등 후속 사업으로 확장될 여지가 크다.
미국 계약은 아직 시제품 공급 단계지만, 세계 최대 방산 조달시장에 K9 계열 장비가 진입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업계에서는 이번 미국 수주가 단순 시제품 공급을 넘어, 향후 양산과 MRO를 포함할 경우 전체 사업 규모가 약 500문·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다만 미국 사업은 시제품 평가 뒤 본사업 수주 여부가 관건이고, 스페인 사업 역시 실제 공급 물량과 매출 인식 시점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은 변수다. 향후 계약 세부 조건, 현지 생산 비중, 추가 유럽 수주로 이어지는지가 K9 수출 확대의 지속성을 가를 전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시험·평가'와 '유럽 양산·현지화'라는 투트랙 수출 전략을 본격화하는 흐름이다. K9이 미국과 서유럽이라는 핵심 시장에서 동시에 성과를 쌓아갈 경우, 중동·아시아 등 추가 수출 시장에서도 플랫폼 신뢰도를 바탕으로 한 파생 수주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과 스페인에서 K9 장비를 잇달아 수주하면서, 기존 동·북유럽 중심이었던 유럽 수출 축을 서유럽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북미 현지 생산·공급망 거점까지 확보하게 됐다"라며 "이번 진출을 계기로 북미와 유럽 시장을 아우르는 방산 수출 경로가 다변화되고, 후속 MRO·부품·탄약 수출까지 연계될 경우 중장기 수출길이 한층 탄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