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태환 기자] 주요 은행의 가계대출이 증가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중금리대출 공급은 오히려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포용금융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가계대출 총량관리와 상대적으로 높은 중저신용자의 연체율이 겹치면서 은행들이 공급에 보수적으로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이 중금리대출에 대한 총량관리 인센티브 확대에 나선 만큼 하반기 공급이 다시 늘어날지 여부가 주목된다.
2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올해 상반기 민간 중금리대출 공급액은 총 1조759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2조5638억원보다 8045억원(31.4%) 감소했다.
은행별 상반기 공급액은 KB국민은행이 684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우리은행 3125억원, NH농협은행 2763억원, 하나은행 2724억원, 신한은행 2132억원 순이었다.
전체 가계대출 흐름과 비교하면 중금리대출의 감소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5대 은행의 정책성 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20일 기준 651조151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조1810억원 증가했다. 당초 은행들이 금융당국에 제출했던 연간 증가 목표액 4조3363억원을 1조8447억원 웃도는 수준이다. 가계대출 자체는 늘었지만 중저신용자를 겨냥한 중금리대출 공급은 반대로 줄어든 셈이다.
중금리대출 공급 감소 배경으로는 우선 가계대출 총량관리 부담이 꼽힌다. 은행권은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에 맞춰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취급을 관리해왔다. 제한된 대출 여력 안에서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높은 중저신용자 신용대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기 쉽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중금리대출에는 총량관리상 인센티브가 적용되고 있지만 취급액 전부가 관리 대상에서 빠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는 은행권 민간 중금리대출 취급액의 30%만 가계대출 관리 목표에서 제외돼 나머지 물량은 총량을 소진했다. 금융당국은 포용금융 확대를 위해 은행권의 총량관리 제외 비율을 50%까지 높이는 방향으로 인센티브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저축은행과 카드사 등 제2금융권에는 더 강한 인센티브가 적용된다. 금융당국은 이달부터 중금리대출 증가분을 가계대출 총량관리 대상에서 100% 제외하기로 했다. 중저신용자에 대한 자금 공급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량 규제의 예외 범위를 넓힌 것이다.
건전성 부담도 은행들이 중금리대출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요인이다.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말 기준 신용평점 하위 50%인 중저신용자의 은행 신용대출 연체율은 2.32%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 0.45%의 5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중저신용자의 채무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만큼 대출 확대가 향후 대손충당금과 자산건전성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은행으로서는 고려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중금리대출 공급 확대에 맞춰져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중금리대출 활성화 방안을 통해 올해 금융권 전체에 민간 중금리대출 28조3000억원+α와 사잇돌대출 3조6200억원 등 총 31조9000억원을 공급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저신용자의 제도권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금리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은행권에서도 중저신용자 대상 상품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신용평점 하위 50% 차주를 대상으로 한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출시하고 대안신용평가 등을 활용해 중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데 나섰다. 하나은행도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고정금리 중금리대출 상품을 선보이는 등 관련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상품 확대가 실제 대출 공급 증가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중금리대출을 늘릴수록 포용금융 역할은 커지지만 연체가 늘 경우 대손충당금 적립과 건전성 부담도 함께 높아진다. 특히 가계대출 총량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차주와 중저신용자 사이에서 자산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의 포용금융 기조에 맞춰 중저신용자 대상 상품과 신용평가 체계를 확대하고 있지만 가계대출 총량과 건전성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총량관리 인센티브 확대 이후 실제 중금리대출 공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가 하반기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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