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금융권 공동채용 박람회와 달리 주요 은행의 실제 채용 성적표는 엇갈렸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올해 상반기 채용을 늘렸지만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수준에 머물렀고 우리은행은 규모를 크게 줄였다. 은행권의 인공지능(AI)·디지털 전환이 빨라지면서 채용도 대규모 일반직 공채에서 필요한 인력을 골라 뽑는 방식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9~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6 금융권 공동채용 박람회'에는 82개 금융기관이 참가했다. 2017년 첫 행사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참가 기관은 2023년 64곳에서 2024년 78곳, 지난해 80곳, 올해 82곳으로 늘었다. 올해는 은행 15곳, 보험 16곳, 증권 9곳, 카드·캐피탈 12곳, 금융공기업 20곳 등이 부스를 차렸다. 금융위원회는 내년부터 박람회를 연 2회로 확대하고 이 가운데 한 차례는 비수도권에서 열기로 했다.
현장 열기도 뜨거웠다. 12개 은행이 채용연계 현장면접을 진행했고 모의면접과 채용상담, 직무체험, 현직자 컨퍼런스 등이 함께 열렸다. 올해부터 금융권 필기전형 강의와 직무체험관도 새로 마련됐다. AI를 활용한 취업 솔루션 등 채용 프로그램도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그러나 실제 4대 은행의 상반기 채용 규모만 놓고 보면 박람회의 외형 확대와는 다소 온도 차가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채용 규모는 공고 기준 약 54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90명보다 55명 줄었다.
은행별 희비도 갈렸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약 110명을 뽑아 지난해와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신한은행은 140명에서 150명으로 약 10명 늘렸고 하나은행은 155명에서 180명으로 약 25명 확대했다. 반면 우리은행은 지난해 상반기 약 190명에서 올해 약 100명으로 90명 줄었다. 올해 우리은행 상반기 신입행원 채용은 일반직 대신 지역인재와 보훈 특별채용 등에 집중됐다.
신한과 하나의 확대만 놓고 보면 은행권 채용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전체 흐름은 아직 다르다. 4대 은행의 연간 채용 인원은 2023년 1880명에서 2024년 1380명, 지난해 1280명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2년 만에 약 600명, 31.9% 줄어든 셈이다. 최근 3년 누적 채용 규모는 KB국민은행 1010명, 신한은행 1030명, 하나은행 1225명, 우리은행 1275명으로 집계됐다.
◆ 은행원은 줄고 생산성은 올라…공채도 '선택과 집중'
채용 감소 배경에는 은행권의 지속적인 조직 슬림화가 자리 잡고 있다. 모바일·비대면 거래 확대와 영업점 통폐합에 따라 과거처럼 대규모 일반직 인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줄어든 영향이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임직원은 모두 5만4210명으로 전년 말 5만5231명보다 1021명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영업점도 2779곳에서 2685곳으로 94곳 줄었다. 지난해 4대 은행의 신규 채용 역시 약 1280명으로 전년보다 100명가량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직원 감소세는 이어지고 있다. 상반기 4대 은행 직원 수는 5만315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만3794명보다 643명 줄었다. 반면 4대 은행의 충당금 적립 전 이익인 충전이익은 12조6614억원으로 2.7% 늘었다. 이에 따라 직원 한 명이 창출한 충전이익은 2억2921만원에서 2억3822만원으로 3.9% 증가했다. 사람은 줄었지만 인당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진 셈이다.
은행원의 몸값도 높아졌다. 올해 상반기 4대 은행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7150만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6350만원보다 12.6%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 2013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은행별로 신한은행 7500만원, 하나·우리은행 각각 7100만원, 국민은행 6900만원이었다.
신규 인원을 크게 늘리기보다는 조직 규모를 줄이면서 기존 인력의 생산성을 높이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희망퇴직도 계속되고 있다. 5대 은행에서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직원은 2023년 2392명, 2024년 1987명에 이어 지난해에도 2364명에 달했다.
채용의 내용도 바뀌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 채용에서는 AI·IT 개발 인력과 디지털금융 인재에 대한 수요가 두드러졌다. 동시에 지역인재와 보훈·ESG 등 별도 전형도 확대됐다. 신한은행은 일반직 공채 정원의 20% 이상을 지역인재로 선발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KB국민은행은 ESG동반성장·보훈 등 별도 전형을 운영했다. 하나은행 역시 지역인재 선발을 강화했다.
5대 은행으로 범위를 넓혀도 장기적인 채용 축소 흐름은 비슷하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신규 채용은 2023년 약 2500명에서 2024년 2380명, 지난해 1720명으로 2년 만에 약 30% 감소했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지점 수는 2020년 말 3750곳에서 지난해 9월 말 3024곳으로 약 19% 줄었다.
금융권은 AI와 디지털 기술 발전에 맞춰 새로운 직무와 인재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용병 은행연합회 회장도 이번 박람회에서 금융산업 변화에 맞춰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실물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은행권 채용의 특징은 전면적인 '채용 반등'보다는 필요한 분야를 중심으로 인원을 늘리는 '선별적 반등'에 가깝다는 해석도 나온다. 역대 최대 규모로 커진 채용박람회의 열기가 실제 은행 일자리 확대로 이어질지는 AI·디지털 전환 속에서도 은행들이 하반기 일반직 채용을 어느 정도 확보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디지털 기술 발전과 고객의 이용 패턴 변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은행권도 기존 영업점 근무 인력뿐 아니라 AI·IT 및 기업금융 등 전문 역량을 갖춘 인재를 대상으로 채용을 진행·확대하고 있다"며 "직무별·수시 채용도 증가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이처럼 전문성을 높인 채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 채용이 과거처럼 대규모 일반직 공채 중심으로 이뤄지기보다는 디지털·IT, 기업금융 등 필요한 분야의 인재를 선별적으로 확보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전체 채용 규모가 크게 늘지 않더라도 전문 인력 중심의 채용 수요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