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주가 1000원 미만의 '동전주' 상장폐지 규정 도입과 제네릭(복제약) 약가 인하 정책이 잇따라 시행되면서 국내 중소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생존 부담이 커지고 있다. 증시에서는 자금 조달길이 막힐 처지에 놓인 데다, 핵심 수익원인 제네릭의 수익성마저 떨어지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강화된 상장폐지 규정에 따라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 미만이거나 시가총액이 코스닥 기준 200억원(코스피 300억원)을 밑돌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후 90거래일 중 45거래일 연속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증시에서 퇴출당한다.
현재 이 기준에 걸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36개사 중 제약바이오 기업은 CMG제약, 에이비온, 랩지노믹스, 노을, 샤페론 등 코스닥 상장사 5곳이다. 특히 에이비온의 경우 최근 2분기 매출액이 3억원 미만에 그쳐 '주된 영업의 정지' 사유까지 발생,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오르며 지난 14일부터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할 경우 거래소는 에이비온에 이를 통보하고 기업심사위원회 심의 절차를 진행하며, 해당하지 않을 경우 매매거래정지 해제 절차를 밟는다.
위기에 몰린 기업들은 주식을 합쳐 주당 가격을 올리는 '주식 병합(액면 병합)'을 추진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노을과 샤페론이 주주총회를 통해 5대 1 주식 병합을 확정 지었고, CMG제약 역시 10대 1 주식 병합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에이비온과 랩지노믹스도 병합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주식 병합은 주당 가격만 높일 뿐 기업가치나 시가총액을 늘려주지는 못한다. 주식 수를 줄이는 만큼 주당 가격이 올라갈 뿐 기업의 시가총액이나 사업 가치 자체는 높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시가총액 퇴출 기준이 코스닥 300억원(코스피 500억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될 예정이어서, 근본적인 실적 개선 없이는 자금 조달 창구인 상장 유지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상장폐지가 단순히 주식 거래가 중단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며 "상장이 폐지되면 투자 유치나 신규 사업 협력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신약 개발이나 임상시험 등 장기간 자금이 필요한 연구개발(R&D) 사업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매출과 손익을 개선해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달 1일부터 시행된 약가제도 개편도 중소 제약사의 재무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제네릭 기본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인하했다. 자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나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이보다 더 낮은 약가가 적용될 수 있다. 또한 동일 성분 제네릭이 많이 출시될수록 약가를 추가로 낮추는 계단식 약가 인하 적용 시점도 기존 20번째에서 13번째 제네릭으로 대폭 앞당겼다. 제네릭 판매 수입을 바탕으로 R&D에 재투자해온 중소 제약사 입장에서는 당장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정부는 R&D에 적극적인 기업을 '준혁신형 제약기엄'으로 지정해 약가 가산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수익성이 낮더라도 필수적인 퇴장방지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업에는 '수급안정 선도기업' 지위를 부여할 계획이다. 제약사들은 약가 가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준혁신형 제약기업'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R&D 투자 비중을 높이거나, 흩어져 있던 R&D 자회사를 본사로 흡수합병하는 등 요건 맞추기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중소 제약사들은 단기간에 사업구조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은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오랜 기간이 필요한 만큼 제네릭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가진 기업이 단기간에 R&D 투자를 크게 늘려 혁신형 기업으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상장폐지 요건 강화와 약가 인하는 각각 증시와 의약품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지만 중소기업에는 자금조달과 수익성 악화로 작용할 수 있다"며 "자체 신약 없이 제네릭과 증시 자금 조달에만 의존해온 중소 제약사들은 한계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기업을 중심으로 사업 재편이나 인수합병(M&A) 등 업계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