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황석진 교수 "가상자산 기본법 더 늦으면 '관망자' 전락…지금이 골든타임"


"스테이블코인·거래소 지분 논쟁에 기본법 발목 잡혀선 안 돼"
"대주주 지분 제한보다 진입장벽 낮춰 경쟁 촉진해야"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가 11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정책 방향과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이제는 해외를 따라가는 '추격자'가 아니라 디지털자산 시장의 '설계자'가 돼야 합니다. 지금도 늦었는데 여기서 더 뒤처지면 추격자가 아니라 '관망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11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더팩트>와 만나 국내 가상자산 산업이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향후 3~5년을 한국이 글로벌 디지털금융 시장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지를 가를 '골든타임'으로 꼽으며,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비롯한 제도 정비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국내 가상자산 정책이 제도권 편입이라는 큰 방향에서는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이용자 예치금과 가상자산 보호, 이상거래 감시, 불공정거래 규제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 전체를 포괄하는 법적 틀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 규제만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로 꼽았다. 거래소와 스테이블코인, 커스터디, 발행·유통, 시장감시 등을 각각 따로 규제하기보다 하나의 체계 안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 교수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조속히 제정해 사업자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큼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허가와 투자자·이용자 보호, 시장감시, 공시, 스테이블코인 등을 하나의 법 체계에서 다뤄야 한다"며 "향후 정책 역시 '가상자산이니까 더 엄격하게 규제한다'는 접근보다 동일 기능·동일 위험·동일 규제 원칙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스테이블코인·지분 제한에 기본법 발목…쟁점과 법 제정 분리해야"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당초 예상보다 입법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황 교수는 현재 기본법 논의를 가로막는 핵심 쟁점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문제를 꼽았다.

그는 특정 쟁점에 대한 이견 때문에 기본법 전체의 제정이 늦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누가 발행하느냐보다 준비자산과 환매권, 유동성 관리, 자본요건, 공시 의무와 감독 책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거래소 역시 지분율 자체보다 이해상충 방지와 내부통제, 시장감시 체계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가 본질"이라고 말했다.

발행인이나 사업자의 세부 자격요건 등은 시행령에 위임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본법에서 모든 세부사항을 확정하려다 입법 자체가 늦어지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9월 정기국회에서도 기본법 처리가 무산될 경우 제도화가 상당 기간 더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 교수는 "법률을 제정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시행령과 감독규정을 만들고 사업자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며 "9월에도 처리가 안 되면 단순히 몇 개월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시장이 국회의 입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스테이블코인과 RWA, 글로벌 거래소, 기관투자 시장은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어 법이 늦어질수록 국내 기업들은 사업을 기다리거나 해외에서 먼저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법의 또 다른 쟁점인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에는 신중론을 폈다.

황 교수는 거래소 시장점유율과 특정 주주의 지분율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용자들이 대주주의 지분율을 보고 거래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와 유동성, UI·UX 등 경쟁력을 보고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주주 지분을 일정 수준으로 낮춘다고 특정 거래소의 거래량이나 시장지배력이 자동으로 분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주주 지분이 많기 때문에 독과점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이미 적법하게 취득한 기존 사업자의 지분을 사후적으로 처분하도록 강제할 경우 재산권 침해와 경영권 불안정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적법한 경로를 통해 취득한 지분을 사후적으로 강제 처분하도록 한다면 재산권과 경영권 안정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위헌 가능성이나 비례성 논란까지 나올 수 있어 정교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려면 지분을 강제로 낮추는 것보다 시장 진입장벽을 낮춰 실질적인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시장을 열어주지 않는데 지분만 제한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몇 퍼센트 이상 금지라는 단순한 방식보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이해상충 규제, 내부거래 제한, 이사회 독립성 등을 설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 "2020년 이후 거래소 사고 57건…운영리스크 관리 기준 제도화해야"

최근 반복되고 있는 거래소 오지급과 해킹·전산 장애 문제에 대해서는 현행 법체계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에 초점을 맞춘 반면 거래소의 IT 운영과 오지급, 시스템 장애, 내부통제 등 운영리스크에 대한 법적 기준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2020년부터 올해 4월까지 국내 5대 거래소가 자체 집계한 해킹·전산 사고가 57건에 달한다"며 "사고 집계 기준이나 보상 방식도 사업자마다 차이가 있어 개별 거래소를 넘어 디지털자산 시장의 운영리스크 관리 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법에는 중요 업무에 대한 다중 승인과 대규모 지급·이체 자동 차단, 콜드월렛·핫월렛 관리, 시스템 복구 및 업무연속성계획, 사고 발생 시 공시·보고와 피해보상 기준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사고 발생 자체만으로 사업자에게 무조건 책임을 묻기보다 내부통제 의무 이행 여부와 사고 예방 조치, 사고 이후 이용자 보호가 적절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결과책임과 관리책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실제 이용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명확한 보상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최근 반복되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오지급·해킹·전산 장애와 관련해 IT 운영과 내부통제 등 운영리스크에 대한 법적 기준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윤호 기자

◆ "중소 거래소 살리려면 숫자보다 '할 수 있는 사업' 늘려야"

대형 원화거래소로 거래량이 집중된 시장 구조에 대해서는 기본법만으로 양극화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황 교수는 "법은 동일한 운동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지 시장점유율을 자동으로 재편하는 수단은 아니다"라며 "기본적인 이용자 보호 수준은 동일하게 유지하되 사업 규모와 위험도에 따른 비례 규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소 거래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거래소 숫자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보다 각 사업자가 전문화할 수 있는 사업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커스터디와 기관중개, RWA, 스테이블코인, OTC 등 다양한 사업 모델을 허용해야 한다"며 "앞으로 경쟁정책은 거래소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각 사업자가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영역을 넓혀 디지털자산 생태계 자체를 확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규제가 강화될수록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나 탈중앙화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했다.

황 교수는 해외 사업자가 한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국내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모집하는 등 국내 영업성이 명확하다면 신고·등록과 이용자보호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만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시장 자체가 국경을 넘나드는 만큼 해외 플랫폼 접근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과도하게 규제하면 오히려 해외 사이트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VPN이나 개인지갑, 탈중앙화 플랫폼 등으로 이동하면 감독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거래소를 막는 것보다 국내 시장을 이용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하다"며 "국내 거래소에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되고 수수료와 유동성,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춘다면 굳이 해외 플랫폼으로 갈 유인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 "CBDC·예금토큰·스테이블코인, 경쟁 아닌 보완관계"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예금토큰이 동시에 추진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세 모델이 서로 경쟁하기보다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CBDC는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최종 결제자산이자 금융시스템의 기반 인프라로,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블록체인 환경에서 활용하는 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기업의 지급결제와 플랫폼, 글로벌 디지털경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봤다.

황 교수는 "CBDC와 예금토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경쟁관계로 보기보다 각자의 기능에 따라 보완재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한 모델이 다른 모델을 배제하는 구조보다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큰증권(STO)과 실물연계자산(RWA)이 확대될 경우 전통 금융사와 가상자산사업자 간 경계도 빠르게 허물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황 교수는 "앞으로는 '증권사 대 거래소' 같은 단순한 경쟁구도가 아닐 것"이라며 "금융과 디지털자산 산업이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는 융합 경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증권사는 고객 자산관리와 투자상품 설계, 기관영업, 규제 대응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은행은 지급결제와 예금·신용, 금융소비자의 신뢰도 측면에서 우위가 있다. 반면 가상자산사업자는 24시간 거래 인프라와 블록체인 기술, 디지털지갑, 글로벌 유동성 연결에 강점을 지닌다.

황 교수는 "향후 시장의 승패는 누가 모든 영역을 독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가장 좋은 디지털금융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거래소와 증권사의 합종연횡이나 전략적 지분투자, 은행과 커스터디 사업자의 협업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내년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에 대해서는 시장 상황과 다른 투자자산과의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고 거래도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과세를 추진하는 문제는 시장에 미칠 영향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며 "다른 투자자산과의 형평성을 비롯한 여러 요소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과세 시행 여부와 별개로 국세청의 실무적인 준비는 상당 부분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황 교수는 "국세청의 과세 시스템 자체는 갖춰져 있다"며 "스테이킹이나 디파이 등 다양한 거래 형태뿐 아니라 해외 거래소를 이용한 거래에 대해서도 과세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역량은 상당 부분 준비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세할 수 있느냐와 지금 과세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별개의 문제"라며 "실제 시장 상황과 과세 형평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 정책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국내 가상자산 규제가 과도하게 강화될 경우 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나 탈중앙화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윤호 기자

◆ "3~5년 뒤 거래소는 '코인 사고파는 곳' 넘어 금융 플랫폼으로"

황 교수는 향후 3~5년 동안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가장 큰 변화로 개인투자자의 코인 거래 중심 시장에서 '종합 디지털금융시장'으로의 전환을 꼽았다.

현재는 거래소의 현물 매매수수료가 핵심 수익원이지만 앞으로는 스테이블코인과 RWA, 커스터디, 기관중개, 결제·송금, 토큰증권 등으로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특히 법인과 기관투자자의 진입이 본격화하면 시장에서 요구되는 인프라 자체가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황 교수는 "개인투자자는 거래 편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기관은 안전한 수탁과 자산 분리보관, 가격 산정, 회계·세무처리, 리스크 관리, 규제 준수 등을 요구한다"며 "이에 따라 커스터디와 프라임브로커리지, OTC 등 새로운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소 역시 단순한 코인 매매 플랫폼을 넘어 디지털자산의 유통과 보관, 결제, 기관 서비스를 연결하는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황 교수는 국내 제도화가 더 늦어질 경우 기업과 자본,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경고했다.

그는 "디지털자산 산업에서 기업은 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국가를 찾아 이동할 수 있고 개발자와 자본 역시 국경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며 "국내에서 규제를 기다리기보다 이미 법체계가 만들어진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과 RWA는 글로벌 네트워크 효과가 큰 만큼 초기 시장과 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향후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리 규제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기업이 준수해야 할 규칙을 명확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나쁜 규제는 엄격한 규제가 아니라 결론이 나지 않는 규제"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플레이어들이 뛰려면 심판이 있어야 하고 운동장의 규격도 정해져 있어야 한다"며 "우리나라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조속히 마련해 예측 가능하고 균형 잡힌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3~5년이 우리나라가 디지털금융 선도국가가 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라며 "이제는 해외 제도를 따라가는 추격자가 아니라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설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용자 보호와 산업 육성을 서로 대립되는 가치로 봐서는 안 된다"며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결국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여기서 더 늦어진다면 우리는 설계자는커녕 '관망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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