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우지수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글로벌 메모리 행사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 병목을 겨냥한 차세대 기술을 나란히 내놨다. 삼성전자는 AI 가속기 위에 메모리를 얹는 3차원(3D) 구조를, SK하이닉스는 HBM과 저장장치 사이에 새 메모리 계층을 두는 고대역폭플래시(HBF) 표준을 각각 앞세웠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두 회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컨벤션센터에서 4일부터 6일(현지시간)까지 열리는 'FMS 2026'에 참가했다. FMS는 올해 20주년을 맞은 메모리·스토리지 분야 세계 최대 규모 행사다.
삼성전자가 처음 공개한 zHBM은 HBM을 놓는 위치를 바꾼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AI 가속기 옆에 HBM을 나란히 배치했는데 이를 가속기 위에 얹어 데이터가 오가는 거리를 크게 줄였다. 신호가 이동하는 길이 짧아지면 속도는 빨라지고 전력 소모는 줄어든다. 삼성전자는 이 구조를 적용한 차세대 시스템이 HBM5보다 최대 8배 높은 성능을 낸다고 설명했다.
함께 공개한 zNAND-O는 낸드 여러 장을 위로 쌓고 칩을 관통하는 전극으로 연결한 제품이다. 기기 자체에서 AI 연산을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환경에 맞춘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400단 이상을 쌓은 10세대 V낸드 'V10 BV-NAND'도 업계 처음으로 선보였다. 같은 면적에 담을 수 있는 데이터를 이전 세대보다 약 58% 늘렸다.
SK하이닉스는 샌디스크와 함께 HBF 첫 표준 규격을 공개했다. HBF는 빠르지만 용량이 작은 HBM과 크지만 느린 SSD 사이에 새 층을 하나 두는 개념이다. 낸드를 여러 장 쌓아 속도와 용량을 키웠다. 이번 규격상 최대 용량은 512기가바이트(GB)로 내년 나올 HBM4E(64GB)보다 8배 크고 속도는 최대 75% 수준을 유지한다.
SK하이닉스는 표준을 업계 공동 자산으로 푸는 쪽을 택했다. 개방형 데이터센터 협력체 OCP를 통해 규격을 공개했고 컨소시엄에는 구글과 텐스토렌트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샌디스크와 표준화 협력을 시작하고 올 2월 컨소시엄을 출범한 지 6개월 만에 내놓은 첫 결과물이다.
김천성 SK하이닉스 솔루션개발 부문장은 "HBF를 통해 메모리와 스토리지 간 경계를 확장하고 시스템 전반의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아키텍처 구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전시 부스에서 10세대 375단 4D 낸드도 처음 공개했다. 내년 초 이를 적용한 기업용 SSD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두 회사가 이 같은 신기술을 동시에 꺼내든 배경에는 달라진 시장 환경이 있다. AI 시장에서 추론 기능이 확산되면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급증해 기존 HBM만으로는 용량과 비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술 경쟁의 배경을 짚는 시장 분석도 나왔다. 조지핀 라우 프랑스 욜그룹 분석가는 FMS 2026 발표에서 메모리 시장이 학습 중심 'AI 1.0'에서 추론 중심 'AI 2.0' 단계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통상 18개월 걸리던 신제품 개발 기간을 12개월로 줄여야 하는 압박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라우 분석가는 이런 환경에서도 한국이 우위를 지킬 것으로 봤다. 그는 "한국은 2031년까지 메모리 시장의 선도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며 정부의 웨이퍼 생산능력 두 배 확대 계획과 두 회사의 대규모 투자를 근거로 들었다.
다만 추격도 이어지고 있다. 욜그룹은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D램 기술력이 선두 업체들이 2019년 상용화한 1z 공정(10나노급 3세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했다. 범용 제품에서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만큼 첨단 기술 경쟁이 더 중요해졌다는 업계 시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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