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ETF·RIA 내놨지만 다시 '미장행'…달러 수요·환율 부담까지


RIA 세제 혜택도 단계적 축소…국내 복귀 유인 갈수록 약화
미국 증시 쏠림에 달러 수요 확대…외화예금도 사상 최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이후에도 투자자들의 미국 증시 쏠림이 이어지며 달러 수요와 환율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정부가 국내 투자자의 '국장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국내시장복귀계좌(RIA) 세제 혜택을 잇달아 도입했지만, 정작 투자자들의 자금은 다시 미국 증시로 향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레버리지 ETF와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등에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정부의 유인책은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달러 수요 증가로 외화예금까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면서 원·달러 환율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 기준 이달 1일부터 27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35억8999만달러(약 5조2762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6월 한 달간 순매수액(6억3296만달러)의 약 5.5배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지난 23일 25억3026만달러였던 순매수액은 불과 2거래일 만에 35억8999만달러로 10억5973만달러(약 1조5581억원) 늘어나며 미국 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이 더욱 가속화됐다.

국장 복귀를 노렸던 정부 정책이 오히려 '미장행'을 부추기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국내시장복귀계좌(RIA)를 잇달아 도입하며 해외 자금의 국내 복귀를 유도했지만, 이후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부진이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의 미국 증시 쏠림은 오히려 더 심화되는 모습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도입 논의는 지난 1월 중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내 투자자들을 붙잡기 위해 미국 시장에서 가능한 레버리지 상품이나 개별주식 ETF 도입을 금융위원회에 검토하도록 했다"고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금융위원회는 1월 말 출시 계획을 발표했고, 약 4개월 만인 지난 5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16개를 한꺼번에 상장했다. 해외 레버리지 상품으로 향하는 투자 수요를 국내 시장으로 돌려 자본시장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책 효과는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났다. 실제 해외 투자자금은 국내 증시가 아닌 미국 기술주와 레버리지 ETF로 향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미국 주식은 미국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를 3배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ETF(SOXL)'였다. 순매수액은 17억5919만달러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 ADR도 지난 23일 6억1367만달러에서 27일 8억1238만달러로 늘었고, 알파벳과 나스닥100지수를 2배 추종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 QQQ(QLD)'에도 자금이 유입됐다.

반면 국내 증시 전반의 투자 심리도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초 역대 최대인 139조6948억원에서 이달 23일 104조2975억원으로 감소했다.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같은 기간 37조7376억원에서 32조7492억원으로 줄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해외 투자자금의 국내 복귀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뉴시스

국장 복귀를 위해 마련한 또 다른 유인책인 국내시장복귀계좌(RIA)의 효과도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RIA는 해외주식을 처분한 자금을 국내 상장주식이나 국내 주식형 펀드 등에 투자하면 해외주식 양도소득의 일정 비율을 공제해주는 제도다. 정부는 해외 투자자금의 국내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올해 도입했으며, 시행 초기에는 양도소득의 100%를 공제했다. 이후 6~7월에는 공제율이 80%로 낮아졌고, 다음 달 1일부터는 50%로 다시 축소된다. 해외 투자자금을 국내로 유인하기 위한 세제 인센티브가 단계적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주식 투자 확대가 환율에도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주식을 매수하려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야 하는 만큼 달러 수요가 늘어나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달러 수요는 외화예금 증가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국내 거주자의 외화예금은 1133억3000만달러로 전월보다 10억8000만달러 증가하며 3개월 연속 늘었다. 이 가운데 달러 예금은 978억달러로 2012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증권사 고객 예탁금 증가와 대기업의 무역대금 수취 등을 주요 배경으로 꼽았다. 증권사 고객 예탁금은 해외 주식 투자에 필요한 달러 대기자금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RIA를 통해 해외에 있던 투자자금을 국내 시장으로 돌리려 했지만 정책 시행 이후 오히려 미국 반도체 레버리지 ETF와 기술주로 자금이 더 몰리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났다"며 "국내 증시에서 해외 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이 이어지면서 환율 부담까지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최근 한국 증시를 '카지노'에 비유하며 개인투자자의 공격적인 레버리지 투자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이제 와서 아무리 후회하더라도 한국 투자자들을 카지노 밖으로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며, 뒤늦은 규제만으로는 과열된 투자 심리를 되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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