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조원에 가까운 재산분할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SK 주가가 고전하고 있다. 최근 사흘간 주가가 20% 가까이 하락하면서 최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도 크게 줄었고, 주식담보대출과 지분 매각 등 자금 조달을 둘러싼 셈법도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 9440억원 현금으로 내야 하는데…판결 당일부터 SK 주가 '뚝'
법원은 지난 24일 최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판단했다. 판결이 확정된 뒤 지급을 미루면 연 5%의 지연이자가 붙는다. 하루 약 1억2930만원, 1년이면 약 472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번 판결은 오는 8월 7일까지 양측이 재상고하지 않으면 확정된다. 어느 한쪽이라도 재상고하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재산분할금 지급 시점도 미뤄지게 된다.
판결이 확정되면 단기간에 거액의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주식담보대출은 가능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부동산이나 비상장 자산은 매각에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상장주식을 담보로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지분을 직접 매각하지 않아도 의결권과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재산분할 판단이 나온 뒤 SK 주가는 연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는 28일 전 거래일(62만3000원) 대비 14.13%(8만8000원) 내린 53만5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국내 증시 전반이 크게 흔들린 영향이 컸지만, 최 회장이 보유 지분을 활용해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낙폭의 의미는 작지 않다.
SK 주가는 지난 24일부터 3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지난 23일 65만5000원이던 주가는 24일 63만원으로 3.82% 내렸고, 27일에도 1.11% 떨어진 62만3000원에 마감했다. 이어 28일 14% 넘게 급락하며 53만원대로 내려앉았다.
판결 당일을 포함한 누적 하락률은 18.32%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1297만5472주의 가치는 지난 23일 종가 기준 약 8조4989억원에서 28일 약 6조9419억원으로 줄었다. 사흘 사이 장부상 지분 가치가 약 1조5570억원 감소한 셈이다.
판결 당일인 24일 종가와 비교해도 지분 가치는 약 1조2327억원 줄었다. 최 회장의 보유지분 가치가 여전히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크게 웃돌지만, 주식을 팔거나 담보로 맡겨 실제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면 주가 하락은 곧 조달 여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 한 달 전엔 담보 여력 넓혔는데…대출비율 다시 53.5%
지난달까지만 해도 최 회장의 주식담보대출 여건은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6월 25일 기준 최 회장의 주식담보대출은 4365억원으로 1년 전 4895억원보다 10.8% 감소했다. 담보로 제공한 주식 수도 407만865주에서 152만4892주로 62.5% 줄었다.
담보주식 수가 크게 감소했는데도 당시 평가액은 8007억원에서 1조3084억원으로 63.4% 증가했다. SK 주가 상승에 힘입어 적은 주식만 맡기고도 기존 대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담보주식 평가액 대비 대출금 비율은 61.1%에서 33.4%로 27.8%포인트 낮아졌다. 담보에서 빠진 지분을 다시 맡기면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넓어진 것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28일 종가 53만5000원을 담보주식 152만4892주에 적용하면 평가액은 약 8158억원으로 줄어든다. 대출 잔액이 4365억원으로 유지됐다고 가정할 경우 담보주식 평가액 대비 대출금 비율은 약 53.5%로 다시 높아진다.
지난달 1조3000억원을 넘었던 담보가치가 약 4926억원 줄면서 주가 상승으로 확보했던 완충력의 상당 부분이 사라진 셈이다. 특히 28일 하루 동안에만 해당 담보주식 가치는 약 1342억원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 낮아진 담보가치…주담대만으로 9440억원 마련할까
시장은 기존 대출의 담보 부담이 다시 높아진 상황에서 최 회장이 주식담보대출을 추가로 얼마나 활용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대출금 4365억원에 재산분할금 전액을 추가로 빌린다면 대출 규모는 단순 합산 기준 1조3805억원까지 늘어난다.
보유지분 전체 가치와 비교하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일 수 있지만 금융회사는 주가 변동 가능성을 고려해 시가보다 낮은 담보인정비율을 적용한다. 단일 종목과 한 명의 차주에게 거액의 대출이 집중되는 데 따른 금융회사의 한도 관리도 변수다.
최근처럼 주가가 하루 만에 10% 넘게 하락하면 추가 담보 제공이나 일부 상환을 요구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경영권 지분을 지키기 위해 받은 대출이 주가 하락 국면에서는 오히려 지분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분 매각도 간단한 해법은 아니다. 28일 종가를 기준으로 SK 지분 1%인 72만4900주를 매각하면 약 3878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 9440억원 전액을 주식 매각으로 마련하려면 단순 계산으로 약 176만주를 팔아야 한다.
이는 최 회장 보유주식의 약 13.6%이자 SK 전체 발행주식의 약 2.4%에 해당한다. 실제 블록딜 과정에서 할인율과 세금까지 고려하면 처분해야 하는 주식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최대주주 지분율 하락과 시장의 매물 부담도 피하기 어렵다.
배당만으로 충당하기에도 격차가 크다. 최 회장이 지난해 SK에서 받은 배당금은 세전 1038억원 수준이다. SK와 SK하이닉스에서 받은 보수 82억5000만원을 더해도 재산분할금의 일부에 그친다. 이 때문에 SK트론 매각도 자금 조달 마련 방안의 선택지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