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국내 원·달러 외환시장이 지난 6일부터 주중 24시간 운영 체제로 전환되면서 수출입기업의 환위험 관리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미국 경제지표 발표나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이 대부분 한국시간 새벽 시간대 이뤄졌지만 국내 외환시장은 문을 닫아 기업들이 즉각 대응하기 어려웠다. 앞으로는 해외 시장이 움직이는 시간에도 국내 시장에서 원·달러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기업들의 환헤지 전략은 물론 환율 형성 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존 서울 외환시장은 오전 9시 개장해 다음 날 오전 2시 마감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후 시간대에는 국내 시장이 닫히면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고용지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 발표 등 글로벌 이벤트가 발생해도 국내 기업들은 사실상 다음 거래일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환헤지는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선물환 등 외환상품을 활용해 미래의 환율을 미리 고정하는 위험관리 방식이다. 수출기업은 앞으로 받을 달러의 원화 가치가 줄어드는 위험을, 수입기업은 향후 지급해야 할 달러 비용이 늘어나는 위험을 줄이는 데 주로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환율이 크게 움직이면 수출입기업은 예상보다 불리한 환율에 결제를 하거나 추가적인 헤지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해외 현지법인 자금 수요나 글로벌 거래처와의 결제가 야간에 이뤄질 경우 국내 시장을 활용하기 어려워 역외 시장이나 다음 영업일 거래에 의존해야 했다.
24시간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이 같은 '시간 공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해외 시장에서 환율이 급변하는 순간에도 현물환이나 선물환 거래를 통해 즉시 환위험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환율 급등 가능성을 우려해 미리 큰 규모로 환헤지를 해두거나 다음 날 시장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실제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규모만 거래하는 방식으로 헤지 전략이 점차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환헤지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기업들은 환율 변동을 예상해 과도하게 헤지할 필요가 줄어들고 불필요한 포지션을 오래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시장 변동이 발생한 직후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만큼 환위험 관리의 효율성도 높아질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은행권도 이에 맞춰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4시간 시장 개장 첫날 서울 딜링룸과 런던지점, 삼성전자를 화상으로 연결해 실시간 외환거래를 시연했다. 서울 딜링룸이 원·달러 호가를 제시하고 런던지점이 해외 시장 참가자들과 거래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국내 기업이 해외 영업시간에도 원화 거래를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선보였다.
이번 제도는 기업의 환헤지뿐 아니라 국내 외환시장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야간 시간대 원화 가격은 싱가포르와 런던 등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사실상 결정됐다. 국내 시장이 닫혀 있는 동안 형성된 역외 환율이 다음 날 서울 외환시장 개장가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이 제한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4시간 거래가 정착되면 해외 투자자와 국내 은행, 기업의 거래가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이뤄지면서 가격 발견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역외 NDF 시장에서 이뤄지던 거래 일부가 국내 시장으로 유입되면 역외시장 의존도가 낮아지고, 특정 시간대 환율이 급등락하는 현상도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거래량이 늘어날 경우 호가 스프레드 축소와 시장 유동성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이번 제도 개편을 중요하게 추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을 겨냥해 "빛이 있는 곳으로 거래를 가져오자"고 말했다. 야간 시간대 원화 거래가 역외 NDF 시장에서 이뤄지며 국내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이 제한됐던 만큼, 24시간 외환시장 개장을 통해 원화 거래를 국내 제도권 시장으로 끌어오겠다는 취지다. 신 총재는 인사청문 과정에서도 원화가 이미 역외 NDF 시장에서 24시간 거래되고 있다며, 24시간 개장 초기에는 야간 시간대 거래 물량과 변동성 확대 여부를 면밀히 살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24시간 거래가 곧바로 기업들의 환헤지 방식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연장 시간대에도 충분한 거래량과 경쟁력 있는 호가가 형성돼야 하고, 은행들의 외환 서비스 역시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추진 중인 역외 원화결제 인프라까지 구축될 경우 해외 투자자와 기업의 원화 접근성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시중은행 외환담당 관계자는 "24시간 거래가 시작됐다고 해서 기업들의 환헤지 방식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미국 경제지표 발표나 해외 거래처 결제 시간에도 국내 시장에서 바로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환위험 관리의 방식은 점진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에는 야간 거래량 확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지만 기업들의 실수요 거래가 늘어나고 해외 투자자 참여가 확대되면 역외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환율 변동성을 완화하는 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