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00원의 경고①] IMF 때와 다르다…달러는 많은데 원화는 왜 약한가


달러 '고갈' 아닌 '수급 불균형'…해외투자에 달러 환류 약화
외국인 매도·NDF가 원화 약세 '증폭'

지난 6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 코스닥이 표시돼 있는 모습 원·달러 환율은 지난 5월 15일부터 지금까지 30거래일 연속 1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송호영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고착되면서 고환율 장기화가 한국 경제에 미칠 충격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 원화 약세는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호재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수입물가와 기업 비용을 끌어올리고 외국인 투자자의 환차손과 자금 이탈을 자극하는 금융불안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현재의 고환율은 외화유동성 경색이 핵심이었던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성격이 다르다. 경상수지 흑자와 양호한 외화유동성에도 해외투자 확대와 기업의 달러 보유, 외국인 포트폴리오 조정, 역외시장 포지션이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팩트>는 세 차례에 걸쳐 원화 약세의 구조적 원인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통화정책 철학, 외환당국의 대응 전략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분기 평균 1500원대를 눈앞에 두면서 고환율이 일시적인 충격을 넘어 구조적인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외화조달 여건은 대체로 양호하지만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와 개인·기관·기업의 해외투자,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가 맞물려 현물환시장의 달러 수요가 공급을 웃돌고 있다. ‘달러 고갈’이 아닌 ‘달러 흐름의 불균형’인 만큼 과거 위기와는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분기 평균 1500원대 눈앞…그러나 달러 유동성은 '양호'

29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2원 오른 1545.2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지난 5월 15일 전 거래일보다 9.8원 오른 1500.8원으로 올라선 뒤 지난 26일까지 30거래일 연속 1500원대에서 마감했다. 지난해 주간 거래 종가 기준 연평균 환율은 1422.16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평균은 1466.9원, 지난 4월 1일부터 이달 26일까지 2분기 평균은 1500.1원으로 높아졌다. 분기 평균 환율이 1500원대에 이른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분기 1596.8원 이후 28년 3개월 만이다.

고환율은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 후퇴와 중동발 불확실성에 따른 글로벌 달러 강세에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 국내 개인·기관·기업의 해외투자가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미국 통화정책과 지정학적 위험이라는 대외 요인에 국내외 투자자의 자산배분 변화에 따른 외환 수급 요인이 맞물린 셈이다.

한국은행도 원화 약세를 대외자산 운용 구조가 달라진 결과로 분석했다. 한은은 지난 4월 17일 발표한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구조적 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자산 축적의 중심이 공공부문의 외환보유액에서 민간의 포트폴리오 투자로 이동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거주자의 달러자산 수요와 고령화·국내 투자 부진 등에 따른 저축 확대가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한은이 지난 6월 18일 발표한 '해외투자와 투자소득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거주자의 해외 증권투자액은 1403억달러로 2024년 670억달러의 두 배를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3.6%에서 7.5%로 상승했다. 지난해 해외 직접투자는 412억달러로 전년보다 감소했지만 증권투자를 중심으로 해외자산 매입이 가파르게 늘어난 것이다.

해외자산과 투자소득은 장기적으로 외화유동성 완충력과 대외지급 능력을 높인다. 그러나 해외에서 발생한 수익이 국내로 배당되지 않고 현지에 유보되거나 재투자되면 통계상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최근 환율 상승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도 결이 다르다. 과거 두 위기가 갚아야 할 달러를 제때 확보하지 못한 외화유동성 위기였다면, 현재는 외화조달 여건이 안정적인 상황에서도 현물환시장의 달러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수급 불균형의 성격이 강하다.

1997년에는 금융기관의 단기외채 만기가 한꺼번에 돌아왔지만 해외 금융기관들이 차환을 거부했다. 외환보유액까지 고갈되면서 국가와 금융기관의 달러 지급 능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당시 한국의 사용 가능한 외환보유액은 같은 해 12월 18일 약 40억달러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기관의 자금 회수로 달러 조달시장이 경색됐고,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과 3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를 통해 금융기관에 달러를 공급했다.

반면 현재는 달러 자산의 '재고'보다 외환시장에서 오가는 '흐름'의 불균형이 문제다. 한국은행은 올해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차익거래유인과 국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국내 기업·은행의 외화채권 가산금리가 안정적인 수준을 나타내 외화조달 여건이 대체로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도 후보자 시절인 지난 3월 31일 "현재 환율은 높지만 달러 유동성은 상당히 양호하다"며 "예전처럼 환율과 금융 불안을 직결시킬 필요는 지금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외환스와프를 통해 원화를 조달해 국내 채권에 투자하면서 외화자금시장에는 달러가 공급되지만, 거주자의 해외주식 투자와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로 현물환시장 수요가 커지면 환율은 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후보자 시절인 지난 4월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원·달러 환율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장부 외 파생상품을 통한 거래가많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환 기자

◆ 달러 벌어도 국내 환류는 제한…NDF까지 원화 약세 증폭

구조적인 문제는 경상수지 흑자와 수출 호조로 벌어들인 달러가 과거처럼 국내 현물환시장에 곧바로 공급되지 않는 데 있다. 수출기업은 수출대금을 해외 설비투자와 현지 비용 지급에 사용하거나 외화예금으로 보유하고, 개인과 기관투자자는 해외주식과 채권을 사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외국환은행의 거주자 외화예금은 1122억5000만달러로 전월보다 15억7000만달러 증가했다. 이 가운데 기업예금은 974억2000만달러로 전체의 86.8%를 차지했고, 한 달 사이 25억4000만달러 늘었다. 달러화 예금도 대기업의 경상거래대금 수취 등의 영향으로 22억4000만달러 증가한 955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기업 외화예금이 모두 수출대금은 아니지만 벌어들인 달러가 즉시 원화로 환전되지 않는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국가 전체의 달러 자산은 늘었지만 현물환시장의 공급은 충분히 증가하지 않는 셈이다. 경상수지 흑자와 수출 증가가 원화 강세로 이어지던 연결고리가 약해지고, 해외투자가 늘수록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방향으로 외환 수급이 달라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도 원화 약세를 자기강화적인 흐름으로 만들 수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외국인의 달러 기준 수익률이 낮아지고, 추가 절하가 예상되면 주식을 팔아 달러로 환전하려는 유인이 커진다. 매도대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환율 상승이 다시 외국인 이탈을 자극할 수 있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지난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36조7841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다만 매도대금 전부가 달러로 환전되는 것은 아니며 국내 채권이나 다른 원화 자산으로 이동할 수 있어, 같은 규모의 자본 유출로 해석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국제수지나 증권자금 통계에 곧바로 포착되지 않는 NDF 등 장외 파생상품 거래도 환율 상승을 증폭시킨다. NDF는 원금을 주고받지 않고 계약 환율과 만기 환율의 차액만 달러로 결제하는 상품으로, 환헤지뿐 아니라 환율 방향에 대한 거래에도 활용된다.

역외투자자가 NDF 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면 거래 상대방인 은행은 선물환 매도 포지션을 중립화하기 위해 현물환시장에서 달러를 사고 외환스와프시장에서 현물환 매도·선물환 매입 방식의 '셀앤바이(Sell&Buy)' 거래를 한다. 실제 달러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아도 역외 포지션이 은행의 헤지 거래를 거쳐 현물환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다.

결국 최근 원화 약세는 경상수지와 외국인 증권자금 등 장부상 흐름만으로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외화유동성은 양호하지만 해외투자와 기업의 달러 보유, 외국인의 자산배분 변화, 역외 파생거래가 중첩되면서 현물환 수급 불균형이 고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 총재 역시 NDF 거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월 1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최근 몇개월 간 환율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가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장부 외 파생상품을 통한 거래(NDF 거래)가 많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Wag the dog)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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