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유연석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코리아의 부적절한 '역사 모독' 마케팅 논란에 대해 본인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날 논란이 발생하자마자 대표이사를 경질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아울러 그룹 고위 임원이 사과의 뜻을 전하고자 직접 오월단체를 찾기도 했다. 비록 현장 만남은 거부당했으나, 그룹 차원에서는 논란이 더 확산하기 전에 전방위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초강수 대응이 스타벅스를 향해 확산하는 불매·비난 여론을 차단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 회장은 19일 사과문을 통해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던 어제(18일),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가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부적절한 마케팅을 진행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대한민국 공동체의 역사적 아픔에 대한 그룹 전체의 역사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모든 책임이 본인에게 있음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앞서 전날 오전 10시 스타벅스는 '단테·탱크·나수데이'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온라인에서는 '탱크'가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계엄군 장갑차를, '책상에 탁!'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치안본부의 은폐 발표('책상에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 외에 지난 4월 16일 진행된 '미니 탱크데이' 행사와 텀블러 용량인 503㎖가 각각 세월호 침몰 참사일 및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를 의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태가 확산하자 신세계그룹은 전날 오후 7시쯤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를 즉시 해임하는 문책성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정 회장은 관련 임직원 전원에 대한 중징계를 함께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날 오전 10시 그룹 차원에서 광주 오월기억저장소 회의실을 찾아 공식 사과하고 면담을 가지려 했으나 오월단체 측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다.
당초 이 자리에는 해외 체류 중인 정 회장을 대신해 김수완 이마트그룹 총괄부사장이 참석하고, 오월단체 측에서는 신극정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만남 20분 전 오월단체 측이 '5·18 폄훼 이벤트' 추진 경위 등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서 사과를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해 김 총괄부사장 등 사절단은 발길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그룹이 논란 당일 계열사 대표를 전격 교체한 데 이어, 이튿날 그룹 회장 명의의 사과문 발표와 광주 현장 방문까지 전례 없이 신속한 조치를 쏟아낸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불매 여론과 정치권의 질타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페이스북과 스레드 등에는 스타벅스 텀블러와 머그잔 등을 부수거나 폐기하는 영상과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는 스타벅스를 대체할 수 있는 장소 리스트가 빠르게 공유되는 등 불매 선언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비판도 거세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X(옛 트위터)를 통해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며 강력히 규탄했다. 5·18기념재단 등도 성명을 통해 기업의 이윤 추구가 비극적 역사 위에서 행사될 수는 없다고 일침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와 맞물려 과거 정 회장이 SNS에 남겨 논란이 됐던 '멸공' 발언까지 다시 소환하는 분위기다.
한편 정 회장은 이번 스타벅스 마케팅 논란을 계기로 그룹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여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조치에는 사태 발생 경위와 승인 절차에 대한 철저한 조사 및 결과 투명 공개, 전 계열사 마케팅 콘텐츠에 대한 검수 과정 재점검, 엄격한 역사의식과 윤리적 기준 정립을 위한 전 임직원 대상 교육 실시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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