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부국증권이 자사주 소각·처분 계획을 확정한 직후 최대주주 측 장내매수가 잇따르면서 자사주 정책의 진정성에 이목이 쏠린다. 표면적으로는 주주환원 강화 조치지만, 자사주가 오랜 기간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거론돼 온 회사라는 점에서 지배력 보강을 위한 '방어막 갈아타기'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부국증권은 증권업계에서도 자사주 비율이 높은 회사로 꼽혀왔다. 보유 자사주 비율은 약 43% 수준으로 전체 상장사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높은 편이다. 자사주는 회사가 보유하는 동안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처분될 경우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특히 최대주주 측 지분율이 압도적이지 않은 회사에서 대규모 자사주는 잠재적 우호 지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처분 대상과 방식에 따라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부국증권의 자사주는 단순한 주주환원 재원이 아니라 경영권 방어 장치로 기능해 왔다는 해석이 적지 않았다.
다만 부국증권의 이 같은 구조는 3차 상법 개정안 논의와 맞물리며 변곡점을 맞았다. 지난 3월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3차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장기간 쌓아둔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부국증권도 기존 자사주 정책을 손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지난 30년간 자사주 소각 전례가 없던 부국증권은 결국 지난 3월 27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자기주식 보유 및 처분 계획 승인의 건을 가결했다. 회사는 전체 발행주식의 35%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소각하고, 나머지는 우리사주제도 실시와 임직원 성과 보상 목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일반주주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평가된다. 다만 부국증권처럼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막으로 해석돼 온 회사에서는 소각·처분 이후 최대주주 측 지분율이 지배구조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수단으로 부상할 수 있다.
최근 오너일가의 장내매수도 이 같은 지배구조 변화와 맞물려 해석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보고서들에 따르면 김중건 부국증권 회장과 친인척 등 특별관계자의 장내매수는 정기 주주총회 이후 빠르게 이어졌다.
김정연 씨는 지난 4월 2일 500주를 장내매수했다. 같은 날 이진우 씨도 세 차례에 걸쳐 각각 300주, 350주, 350주 등 총 1000주를 사들였다. 이진우 씨는 4월 7일에도 900주를 추가 취득했다. 이어 김정연 씨는 4월 29일 1570주, 4월 30일 1130주 등 이틀간 총 2700주를 장내매수했다. 이진우 씨도 4월 30일 1000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이달 들어서도 매수는 계속됐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상윤 씨는 지난 11일 1000주, 12일 5450주 등 이틀간 총 6450주를 장내매수했다. 이진우 씨도 12일 1547주를 추가 취득했고, 김중건 회장 본인 역시 13일 1124주를 사들였다. 이후 김 회장은 14일 801주, 15일 4300주를 추가 매수했고, 이진우 씨도 15일 630주를 장내매수했다.
주총 이후 공시된 김 회장 측 장내매수 물량은 총 2만952주다. 최대주주와 특별관계자의 지분율은 4월 2일 공시 전 34.51%에서 이달 15일 34.71%로 0.20%포인트 높아졌다. 변화 폭 자체는 크지 않지만 자사주 소각·처분 계획을 확정한 직후 최대주주 측 매수 공시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향후 지배구조 변화의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부국증권은 과거 경영권 위협을 받은 경험도 있다. 2002년 부국증권 대주주였던 김중광 전 경남모직 부회장의 회사가 부도 처리되면서 오너일가 지분율은 30% 밑으로 떨어졌다. 이후 리딩투자증권이 부국증권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2007년에는 지분율을 15% 수준까지 확대했다. 리딩투자증권이 2017년 케이프투자증권에 지분을 넘기면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현재도 케이프투자증권은 부국증권 지분 5.82%를 보유하고 있다.
남은 자사주의 활용 방식 역시 지배구조 논란의 변수로 남아 있다. 부국증권은 자사주 소각과 잔여 자사주 활용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임직원 보상 체계를 정비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잔여 자사주가 실제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배분되는지에 따라 시장의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사주제도와 임직원 성과 보상은 명분상 내부 구성원 보상에 가깝지만, 우호 지분 성격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국증권 측은 "해당 장내 매수는 주주 개인의 장내 매수로, 회사의 자사주 정책이나 별도의 경영 의사결정과 연계된 사안은 아니다"라며 "공시된 내용 외에 회사가 추가로 확인해 드릴 사항은 없다. 매수 배경에 대해서도 주주의 개인적인 영역으로 회사가 별도로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인 18일 부국증권은 전 거래일(6만6800원) 대비 0.30%(200원) 상승한 6만7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날 6만6600원으로 개장한 부국증권은 장중 6만1200원까지도 내렸으나 하락 폭은 만회하며 장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