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유럽연합(EU)이 결국 칼을 뽑았다. 최근 10년간 집값이 60% 넘게 치솟고 임대료까지 20% 이상 오르자, EU가 한화 741조원(약 4300억 유로) 규모 '초대형 처방'을 꺼내 들었다. 각국에 맡겨왔던 주택 정책을 처음으로 범유럽 차원에서 통합 대응하겠다는 선언이다. 주거 불안이 더 이상 시장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리스크'로 번졌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 745조 동원…공급·투자·개혁 '전면 개입'
29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EU 첫 범유럽 주택 정책, 부담가능 주거계획 발표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지난해 12월 '유럽 부담가능 주거계획'(The European Affordable Housing Plan)을 발표했다. 범유럽 차원 주택 정책이 나온 배경은 구조적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에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9월 주거 문제를 EU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규정했다.
유럽 주택시장은 이미 구조적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 2013년 이후 주택 가격은 가계 소득 증가 속도를 크게 웃돌며 60% 이상 상승했다. 평균 임대료도 20% 넘게 올랐다. 신규 임대료 상승 폭은 더 가파르다.
반면 공급은 오히려 위축됐다. 높은 건설 비용·혁신 결여·숙련 노동력 부족이 겹치며 신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2021년 이후 주거용 건축 허가는 22% 감소했고 기존 주택의 약 20%는 공실로 남아 있다.
집값 문제는 경제를 넘어 사회 전반을 흔들었다. 과도한 주거비는 가처분 소득을 잠식하고 소방관·간호사·교사 등 필수 노동자들조차 도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청년층은 취업·결혼을 미루고 있으며 저소득층은 노숙 위험까지 떠안는 상황이다. EU가 주거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격상시킨 이유다.
EU가 내놓은 주택 정책 핵심은 대규모 자금과 공급 확대다. EU는 2029년까지 741조원(약 4300억 유로)를 동원한다. 수요를 맞추려면 연간 200만 가구 이상 공급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내놨다. 현재보다 매년 65만 가구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연간 258조원(약 1500억 유로)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 첫 범유럽 처방…실효성은 "보완 필요해"
주택 정책은 공급 확대·투자 활성화·개혁 지원·취약계층 지원 등 네 축으로 구성됐다. 주택 공급 측면에서는 건설산업 생산성·역량을 강화하고 공급 가속화를 위한 규제 완화·품질 겸비 등을 제시했다. 투자 활성화는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국가·지역 파트너십 계획'·'EU Facility'·'유럽 경쟁력 기금' 등을 통해 주택 투자 확대를 모색한다.
특히 단기 임대 규제와 투기 억제도 정책에 담았다. 에어비앤비 등 단기 임대에 대한 입법을 추진하고, 주택 거래와 소유 구조를 분석해 투기 패턴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청년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기숙사 확대·보증금 부담 완화·사회주택 공급 확대도 함께 추진한다. 주택을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기본권'으로 재정의한 조치다.
이번 계획은 EU 첫 범유럽 주택 정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유럽의회와 주요 기관들은 주거 문제를 국가 의제로 끌어올린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단기 임대 규제와 주거 취약 지역 식별 체계 마련도 정책 실행력을 높일 기반으로 꼽힌다.
그러나 과제도 분명하다. 산업계는 인허가 간소화와 투자 확대를 환영하면서도 노동력 부족과 원자재 가격 상승을 해결할 구체적 대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금융권 역시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 균형을 맞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EU가 내놓은 정책은 사상 첫 범유럽 차원의 포괄적 주택 정책"이라며 "주택 공급을 늘리고 투자를 활성화하며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한 이들을 돕기 위한 비전과 조치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거문제를 국가적 의제로 격상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실효성 등의 측면에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며 "특히 경제적 파급효과를 포함한 주택 가격 동향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 필요한 경우 후속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