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공식 취임했다. 국회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과 대통령 임명안 재가까지 마무리되면서 우려됐던 한은 수장 공백은 피하게 됐다. 새 총재 교체의 의미는 단순 인사 이상이다. 이창용의 한은이 물가와 가계부채, 환율, 집값 사이의 균형을 관리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신현송의 한은은 여기에 국제금융 충격의 전이 경로와 원화의 국제적 위상까지 더 깊게 들여다보는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신 총재를 설명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단연 '국제금융'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22일 신 총재를 지명하면서 "학문 깊이와 실무적 통찰력을 모두 갖춘 국제금융과 거시경제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평가했다. 실제 신 총재는 프린스턴대 교수, IMF 상주학자, 뉴욕 연방준비은행 금융자문위원,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BIS 경제자문역과 통화경제국장을 거친 인물이다.
한은 총재에 기용된 인물 가운데서도 드물게 글로벌 자본 흐름과 금융시스템을 연구해온 색채가 짙다. 시장이 새 체제를 'BIS맨의 귀환'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이창용 총재와의 차이도 여기서 갈린다. 이 총재 역시 국제기구 경험을 지닌 경제학자였지만, 지난 4년 동안 실제 한은 운영의 무게중심은 국내 거시 안정에 놓였다. 고물가 국면에서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이후에는 경기 둔화 압력 속에서도 집값과 가계부채, 원·달러 환율, 금융안정을 함께 보며 신중한 조정에 나섰다. 이 총재가 퇴임식에서 "통화·재정정책만으로 우리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 대목도, 한은이 금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 위기와 싸워왔음을 보여준다.
반면 신 총재는 청문회 과정에서 금리 수준 자체보다 정책의 전달 경로와 구조를 더 강조했다. 그는 "물가는 한국은행의 최우선 임무다. 물가만큼은 지키겠다"고 밝혔고, 중동발 공급충격이 장기화할 경우에 대해서는 "2차 파급효과가 나오는지, 근원물가에 반영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가계부채 문제를 두고는 "금융안정 문제일 뿐 아니라 성장을 발목 잡고 있다"고 진단했고, 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DSR 등 거시건전성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새 한은의 초점은 단순히 '매파냐 비둘기파냐'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물가를 중심축에 두되, 환율과 외화 유동성, 자본 유출입, 부동산 금융, 비은행권 리스크를 함께 보는 '실용적 국제금융형 총재'에 가깝다. 청문회에서 신 총재는 "환율 레벨 자체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고 급격한 상승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기존 인식을 재확인하는 한편,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원화 역외결제시스템, 금융혁신과의 접목, 그 테두리 안에서 거시건전성 장치를 어떻게 구축할지"가 과제라고 밝혔다. 이는 이창용 체제보다 외환시장 구조와 원화 국제화 논의를 더 전면에 세울 가능성을 시사한다.
소통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이창용 총재 시기 한은은 이른바 '한국형 포워드 가이던스'와 'K-점도표'를 도입하며 시장과의 소통을 넓혔다. 하지만 신 총재는 청문회에서 단기적으로는 현 체제를 유지하되, 장기적으로는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평가하겠다고 했다. 중앙은행이 말을 너무 크게 하면 시장이 이를 약속으로 받아들여 되레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인정했다. 새 한은이 이전보다 말을 줄이고, 대신 메시지의 밀도와 원칙을 더 중시하는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강점은 분명하다. 한국 경제가 지금 맞닥뜨린 변수는 국내 경기만이 아니다. 미국의 금리 경로, 달러 강세, 중동 전쟁, 국제유가, 외국인 자금 흐름, 스테이블코인과 지급결제 변화가 동시에 원화와 물가, 시장금리에 영향을 준다. BIS에서 오랫동안 글로벌 금융안정과 통화정책을 다뤄온 신 총재는 이런 복합 충격을 해석하는 데 강점을 가진 인물이다. 청문회에서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좀 더 오픈된 입장이 됐다"고 했고, 지급결제 기능이 중앙은행의 핵심 책무와 맞닿아 있다고 밝혔다. 한은의 역할을 전통적 기준금리 결정에만 가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하지만 과제도 만만치 않다. 청문회에서는 외화자산 보유, 가족 국적 문제, 장녀 전입신고 논란 등 도덕성 공방이 이어졌고, 신 총재는 일부 사안에 대해 "잘못한 것이다"라고 시인하거나 이해상충 소지를 줄이기 위해 외화자산을 취임 전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용 체제가 국내 복합위기를 관리하는 데 탁월했다면, 신현송 체제는 그 위에 국제금융 충격의 해석과 원화 시스템의 구조 개선까지 얹어야 한다.
신 총재의 강점은 세계를 읽는 눈이다. 남은 과제는 그 눈을 한국의 집값, 가계부채, 환율 불안, 체감물가라는 현실 언어로 얼마나 정교하게 번역하느냐라는 시각도 있다. 21일 시작된 새 4년은 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창용 총재 체제가 물가와 가계부채, 환율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방점이 있었다면, 신현송 총재 체제는 여기에 글로벌 자금 흐름과 외환시장 구조까지 더 깊게 들여다볼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에서는 전문성에 대한 기대가 큰 반면, 그 시각을 한국 경제 현실에 어떻게 풀어낼지가 가장 큰 숙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