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손원태 기자] 롯데홈쇼핑 경영권을 둘러싼 롯데와 태광의 '한 지붕 두 가족' 체제가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롯데홈쇼핑의 독특한 지분구조가 낳은 현상으로,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실적이 줄곧 내리막을 타면서 양측 갈등은 날 선 책임 공방으로 번졌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2021년 연 매출 1조1027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4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다. 2022년 1조778억원으로 간신히 1조원대를 지켰으나, 2023년 12.6% 급감한 9416억원으로 주저앉았다. 이후에도 롯데홈쇼핑은 △2024년 9249억원(-1.8%) △2025년 9023억원(-2.4%)으로 매출이 뒷걸음질하며 9000억원선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급변한 소비 패러다임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전통적인 TV 시청을 대체하며 '본방 사수' 개념을 지웠고, 쿠팡을 필두로 한 이커머스 업계가 라이브 커머스를 확장하며 홈쇼핑 입지를 흔들었다.
실제로 한국TV홈쇼핑협회 조사 결과 국내 TV홈쇼핑 7개 업체(GS·CJ·현대·롯데·NS·홈앤·공영홈쇼핑)의 합산 매출 규모는 2020년 5조9000억원대에서 2024년 5조5000억원대로 감소했다. 시장 침체가 롯데와 태광의 20년 동거를 갈등으로 치닫게 한 도화선이 된 셈이다.
◆ '우리홈쇼핑' 경영권 놓고 사돈에서 앙숙으로
본래 롯데와 태광은 혼맥으로 이어진 관계였다.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고 신선호 일본 산사스그룹 회장의 사위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홈쇼핑이 유통업계 핵심 채널로 부상하며 두 기업은 사돈지간에서 앙숙지간으로 돌아섰다.
2006년 7월, 케이블TV '티브로드'를 운영하던 태광은 홈쇼핑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우리홈쇼핑 지분을 약 45%까지 늘린다. 그러나 한 달 뒤 롯데는 최대 주주였던 경방의 보유 지분 약 53%를 인수하며 판도를 뒤집었다. 그해 12월 방송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우리홈쇼핑 주인으로 롯데의 손을 들어주며 갈등은 법정으로 옮겨갔다.
태광은 방송위원회를 상대로 롯데의 '우리홈쇼핑 인수 승인(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 취소' 소송을 제기하며 반발을 이어갔고, 롯데는 채널명을 롯데홈쇼핑으로 바꾸며 계열사로 편입했다.
5년의 공방 끝에 2011년 대법원은 우리홈쇼핑 인수 승인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최종 판결했다. 롯데는 최대 주주로서 경영권을 확보하고 태광이 2대 주주로 견제하는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시점이다. 롯데홈쇼핑 법인명이 여전히 '우리홈쇼핑'으로 남은 점이나, 태광이 '롯데' 브랜드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것 모두 이 같은 오래된 갈등의 흔적이다.
◆ 실적 악화로 책임 공방…20년 만에 또 법정 가나
2020년대 들어 양측의 갈등은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론으로 비화했다. 2023년 7월 롯데홈쇼핑이 롯데지주와 롯데웰푸드로부터 서울 양평동 사옥을 2039억원에 매입하자, 태광은 '고가 매입을 통한 계열사 부당 지원 행위'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공정위가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나, 태광은 사옥 재매각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재겸 롯데홈쇼핑 대표의 재선임 안건이 도마 위에 올랐다. 태광은 롯데홈쇼핑의 △불법 내부거래 △부실 계열사 재고 처리 △수의계약 일감 몰아주기 등을 이유로 김 대표의 연임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태광은 지난 1월 이사회에서 내부거래 승인 안건이 부결됐는데도 롯데홈쇼핑이 롯데 계열사들의 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것은 위법행위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롯데홈쇼핑 홈페이지 내 '롯데백화점' 카테고리를 들었다. 롯데홈쇼핑이 롯데쇼핑으로부터 받은 명품, 패션잡화, 가전, 식품 등을 판매한다는 내용이다. 상법 제398조에 따라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김재겸 대표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롯데는 태광이 근거 없는 주장으로 회사 경영을 방해하고 있다면서 이사회 구도를 재편했다. 지난달 13일 정기주주총회에서 기존 '롯데 측 5명 대 태광 측 4명'의 구성비를 '6대 3'으로 바꿨다. 이렇게 되면서 롯데는 태광의 동의 없이 '재적이사 3분의 2 찬성' 조건을 단독으로 충족하게 됐다.
수세에 몰린 태광은 즉각 재공격에 나섰다. 롯데쇼핑 자회사인 한국에스티엘의 잡화 브랜드 '사만사 타바사'의 부실 계열사 재고 처리 의혹과 롯데그룹 물류 계열사인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잇달아 제기했다. 이에 롯데는 '사만사 타바사'의 롯데홈쇼핑 최근 3년간 주문액이 연평균 37% 신장한 우량 브랜드며, 배송 물량의 50%는 CJ대한통운이 맡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재 태광은 롯데홈쇼핑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롯데 계열사들의 현금 인출기로 전락해 실적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는 입장인 반면, 롯데는 태광이 마구잡이 식으로 의혹을 제기하면서 경영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 롯데홈쇼핑 실적 악화를 놓고 으르렁거리면서 20년 악연이 다시금 법정 공방으로 재현되고 있다. 태광은 롯데홈쇼핑 김재겸 대표의 해임안을 요구하며 임시주총을 소집했고, 부결되더라도 소송을 예고했다. 롯데 역시 법적 판단에 맡기겠다면서 감정골을 드러냈다.
태광 측은 "상법 취지를 훼손하고 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롯데를 겨냥했고, 롯데 측은 "합법적이고 공정한 거래를 아무 주장이나 붙여서 배포한다"고 맞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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