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고환율에 취약차주부터 '경고등'…은행권 건전성 시험대


연체율·무수익여신 동반 상승…전쟁 장기화 땐 충당금 부담 확대 우려

고유가·고환율 충격이 장기화할 조짐이 나타나면서 국내 은행들의 건전성 부담이 커지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 | 김태환 기자] 고유가·고환율 충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은행권 자산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으로 인해 취약차주의 상환 여력이 흔들리고 있어, 은행 부실채권 증가와 충당금 부담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2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2월 말 기준 전체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 평균값은 0.46%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말 0.36%와 비교해 0.10%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다.

대출 주체별로 보면 가계대출 연체율은 0.35%, 대기업대출은 0.11%, 중소기업대출은 0.67%로 중소기업 부문이 가장 높았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가계는 0.05%포인트, 대기업은 0.08%포인트, 중소기업은 0.17%포인트 각각 상승했다.

건전성 지표도 악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5대 은행의 2월 말 기준 전체 원화대출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0.40%로 지난해 말 0.34%보다 0.06%포인트 높아졌다. 3개월 이상 연체돼 이자 수익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무수익여신도 증가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무수익여신은 3조8468억원으로 전년 3조1787억원보다 약 21%(6681억원) 늘었다.

감독당국 지표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56%로 전월 말 대비 0.06%포인트 상승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0.67%로 0.08%포인트 올랐고, 이 가운데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82%, 중소법인 연체율은 0.89%로 각각 0.10%포인트 상승했다.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0.71%로 0.08%포인트, 가계대출 연체율은 0.42%로 0.04%포인트 각각 높아졌다.

더 큰 변수는 중동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따라 고유가와 고환율 흐름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격화 이후 1500원을 돌파한 뒤 최근에도 1490~15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국제유가도 25일 기준 브렌트유가가 배럴당 100.23달러를 기록하는 등 100달러 선을 웃돌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고유가·고환율 환경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국내 거시경제 파급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3달러 이상으로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55%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6%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상승이 생산 원가와 수입물가, 에너지 비용을 끌어올리고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분석이다.

NH금융연구소도 최근 내부 경영진과 공유한 '이란 전쟁 전개 시나리오별 경영 환경 변화·대응 포인트'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3개월 이어질 경우 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고, 1년간 지속될 경우 올해 연간 성장률이 0%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시나리오에서 물가 상승률은 2~4%포인트 높아지는 반면 소비와 투자는 각각 0.3~0.6%포인트, 0.6~0.7%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 비율, 무수익여신이 동시에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 장기화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은행권 건전성 관리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며 "연체 자산이 늘어나면 이자이익 기반이 약해지고 향후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까지 확대되면서 수익성과 건전성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이에 따라 취약차주에 대한 선제 관리와 충당금 확충, 여신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런 취약차주 연착륙 기조는 최근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포용금융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포용금융이 단순한 서민대출 확대를 넘어 고금리 부담 완화와 대환, 채무조정, 재기지원 등을 통해 취약차주가 연체와 부실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도권 안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이에 따라 은행권의 취약차주 관리 강화는 상생금융 차원을 넘어 건전성 방어를 위한 선제 대응으로도 해석된다.

아울러 중소기업·개인사업자 등 취약 익스포저에 대한 건전성 점검도 한층 강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개인사업자 여신 재편은 단순한 대출 축소보다 취약 업종과 고위험 차주를 선별해 익스포저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현금흐름이 불안정한 차주에 대해서는 심사와 한도 관리를 강화하는 반면, 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차주에는 대환·채무조정·정책보증 연계 등을 통해 연착륙을 유도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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