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정부가 농협 핵심 간부의 횡령·금품수수 혐의와 관련해 경찰 수사를 의뢰하면서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의 거취가 불투명해지는 분위기다. '농민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중앙회 회장이 비리 사건에 휘말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1월부터 실시한 농협중앙회·자회사·회원조합 등에 대한 정부 합동 특별감사를 바탕으로 위법 소지가 큰 14건을 수사 의뢰할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또 지적된 사항 96건에 대해선 주의·경고 또는 농협이 상응하는 시정 조치, 개선 방안을 마련하도록 처분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호동 회장은 지난 2024~2025년 농협재단 핵심 간부를 통해 재단 사업비를 유용, 중앙회장 선거에 도움을 준 조합장·조합원·임직원 등에게 4억9000만원의 답례품을 제공했다. 강호동 회장은 또 지난해 2월 지역조합운영위원회로부터 회장 취임 1주년 기념을 명목으로 580만원 상당 10돈짜리 황금열쇠를 받았다는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를 받는다. 재단 사업비를 유용한 농협재단 간부는 1억3000만원을 빼돌려 자녀 결혼식 비용으로 사용하거나, 안마기 등 사택 가구류를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강호동 회장이 이사회 조직 개편 의결을 미이행하고 자의적으로 포상금을 집행하는 등 재단 자금 운용을 불투명하고 독단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확인됐다. 또한, 중앙회 회장과 임원들이 다른 협동조합과 비교했을 때 최소 3배 이상 많은 퇴임 공로금(퇴직금)을 받고 있으며, 기준보다 넓고 고가인 업무용 사택도 제공받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밖에 강호동 회장과 간부들은 각종 수당·기념품·선물·상조비를 지원받는 등 방만한 예산·재산 관리로 뭇매를 맞고 있다. 부실 재정 은폐, 채용 청탁, 법인카드 사적 유용 등 회원조합의 비리를 방치한 것으로도 지적받고 있다.
정부 합동 부패예방추진단장인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농협 핵심 간부들의 비리와 전횡, 불공정한 특혜성 대출·계약, 방만한 예산 집행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가 내부 통제 장치의 기능 상실 및 금품에 취약한 선거 제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로써 농협은 또 한 번 '비리의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중앙회 회장을 둘러싼 비리 논란만 하더라도 수차례 반복 중이다. 농협이 지난 1988년 민선 회장 체제로 돌아선 이후 이번 강호동 회장을 포함한 7명 중 6명이 각종 비리로 잡음을 일으켰다. 한호선·원철희·정대근 등 1~3기 회장 3명은 비자금 조성,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처벌되기도 했다.
농협은 이러한 각종 논란에도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국 농협 조합장들이 직접 투표해 회장을 뽑는 과정에서 금품 제공 등 불법적인 행위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해서 제기돼 왔으나, 오랜 기간 자정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중앙회 회장이 인사권·감사권을 쥐고 농업 경제와 금융 사업 등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등 권력 집중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강호동 회장이 실제로 회장직에서 물러날지 여부는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업무에서 배제될지, 아니면 정상 경영을 펼칠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당사자에 대한 직접 수사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운신의 폭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농협중앙회 측은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이날 정부 발표와 관련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인다. 지적된 사항에 대해 제도 개선과 관리 체계 보완을 추진하고 유사 사례의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며 "조직 전반의 투명성과 책임을 강화하고, 앞으로도 농업인과 국민에게 신뢰받는 협동조합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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