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호텔신라가 이부진 대표이사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정기 주주총회에 올리면서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반발이 이는 모양새다. 실적 회복이 더딘 데다 주가 부진이 장기화한 상황에서 6연임 명분이 약하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위임장 확보 과정까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이달 정기 주주총회는 연임 여부를 넘어 호텔신라의 주주 소통과 지배구조 신뢰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됐다.
◆ 이부진 6연임 안건 상정…회사 "경영 연속성 필요"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오는 19일 서울 중구 삼성전자 장충사옥에서 주총을 진행한다. 핵심 안건은 이부진 대표의 사내이사 선임의 건이다. 안건이 통과되면 이 대표는 다시 3년 임기를 부여받아 사내이사직을 이어가게 된다.
호텔신라 입장에서 이 대표의 연임 카드는 낯선 선택이 아니다. 이 대표는 지난 2011년 대표이사에 오른 뒤 줄곧 회사를 이끌어 왔다. 호텔과 레저, 면세점 사업을 동시에 관리해 온 만큼 대외 변수에 민감한 업종 특성을 고려하면 경영 공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회사의 판단이다.
호텔신라 이사회는 "(이부진 대표는) 현재까지 총 24년 7개월 재임기간 동안 경영전략담당 및 대표이사 역할을 수행했다. 회사 내 호텔 등 전 산업에 대해 높은 수준의 경영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며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위기 극복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더욱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주주들이 받아들이는 온도차다. 시장에서는 이번 안건을 단순한 재선임이라기보다 장기 재임에 대한 평가 성격이 강한 안건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특히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 상황에서 다시 연임안을 상정한 만큼 회사가 주주들에게 어떤 성과와 명분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4조683억원, 영업이익 135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흑자 전환했다. 다만 순손실은 1728억원으로 적자 폭이 확대됐다. 4분기 기준으로도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핵심 축인 면세(TR) 부문의 부진이 이어졌다. 호텔·레저 부문이 수익성을 일정 부분 방어했지만 면세 사업의 회복 속도가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는 점은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 있다.
현재 온라인 종목토론 게시판 등에서 소액주주들은 "무능한 이부진 연임에 반대표를 행사하자", "역대 최악의 사장을 끌어 내리자"며 9일부터 개시된 전자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반대표를 행사하는 소액주주들의 인증 화면도 꾸준히 올라오는 추이다.
◆ 실적 회복 더딘데 무배당…주가 부진에 쌓인 불만
소액주주 반발이 확대된 배경에는 주가 흐름도 있다. 호텔신라 주가는 코로나19 이후 면세 업황 회복 기대를 타고 한때 반등했지만, 이후 다시 힘을 잃으며 약세 흐름을 이어왔다. 2018년 13만원대를 오르내리던 주가는 최근 3만원대까지 밀린 상태다. 단기 조정이라기보다 수년간 이어진 하락 흐름에 가깝다는 점에서 주주들의 체감 피로도도 적지 않다. 시장에서는 면세 업황 정상화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면서 실적 기대와 주가 반등 시점이 계속 뒤로 밀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호텔신라는 전 거래일(4만2050원) 대비 4.04%(1700원) 하락한 4만3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장중에는 3만9800원까지도 빠졌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주가를 더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업황 부진이라는 외부 변수는 차치하더라도 장기간 주가가 부진한 동안 회사가 보여준 주주 소통이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다. 경영진 연임 논의가 나오는 시점까지 주가가 뚜렷한 회복 흐름을 보여주지 못하자 주주들 사이에서는 책임 있는 설명 없이 시간이 흘렀다는 불만도 상당하다. 경영 연속성을 강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성과나 향후 계획이 먼저 제시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런 설득력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당이 빠진 점도 주주 정서를 악화시킨 대목이다. 호텔신라는 이번 주총에서 배당 안건을 별도로 내놓지 않았다.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음에도 주주환원책은 사실상 비어 있는 셈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업황과 재무 부담, 투자 여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일 수 있지만, 주주들로서는 성과는 부족한데 연임만 반복된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크다. 주가 하락으로 이미 손실을 안고 있는 소액주주들에게 배당 공백은 숫자 이상의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배당과 관련해 호텔신라 측은 "당사는 어려운 영업환경 속에서도 배당을 유지하고자 노력했으나, 급격한 시장환경 변화와 수요회복의 불확실성이 잔존하며, 사업 포트폴리오 효율화 과정에서 안정적 현금흐름 기반 확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미배당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주주환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시장 분위기도 호텔신라에는 부담이다. 최근 상장사들 사이에서는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주주친화 정책 강화 등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호텔신라가 뚜렷한 주주환원 메시지를 내놓지 못한 채 연임안을 먼저 올린 것은 주주들의 시선에선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회사는 업황 회복과 경영 안정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주주들은 여전히 주가와 배당, 실질적인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먼저 묻고 있는 셈이다.
◆ 위임장 논란에 정관 변경 철회까지…주주 민심 의식했나
주총을 앞두고 위임장 확보 과정에서 논란도 불거진 바 있다. 호텔신라는 외부 업체를 통해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나섰는데, 일부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자택 방문 등을 통한 위임장 권유가 과도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법적 절차에 따른 통상적인 권유 행위로 볼 수는 있지만 경영진 연임 안건이 걸린 민감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주주 정서를 자극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회사가 정관 일부 변경안을 철회한 점도 눈길을 끈다. 호텔신라는 당초 이번 주총에 정관 변경 안건도 함께 상정했다가 지난 3일 이를 철회했다. 주총을 앞두고 불필요한 쟁점을 줄이려는 조치로 볼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그만큼 회사가 주주 여론의 부담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불거진다. 연임안 하나만으로도 표심이 예민한 상황에서 다른 논란거리까지 떠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분 구조상 이번 주총은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계열 지분이 우호 지분 역할을 하더라도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없고, 일반주주 표심이 어느 정도 결집하느냐에 따라 주총 분위기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건 통과 여부와 별개로 반대표 비중이 예상보다 높게 나올 경우 회사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호텔신라의 주주는 삼성생명(7.3%), 삼성전자(5.1%), 삼성증권(3.1%), 삼성카드(1.3%) 등 계열사 지분(16.9%)과 국민연금(7.02%) 등이다. 호텔신라의 소액주주 비율은 73.4%에 이른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주총은 그저 연임안을 통과시키는 데서 끝날 사안이 아니다"라며 "주가와 실적, 주주환원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상황인 만큼 회사가 왜 지금 다시 이부진 대표 체제가 필요한지, 이후 어떤 방식으로 주주가치를 끌어올릴지까지 함께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관 변경안 철회나 위임장 논란만 봐도 회사가 주주 민심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며 "연임안이 통과되더라도 반대 여론이 적지 않게 확인되면 호텔신라 입장에서는 이후 주주 소통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당사는 수익 구조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재무건전성을 회복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라면서 "향후 사업 안정화 및 수익선 개선 시점에 배당 실시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