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땐 약을 먹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는 영양제를 먹습니다. 이제는 약국뿐만 아니라 편의점이나 온라인 등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겐 익숙한 약과 영양제들은 각자의 역사와 속사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 코너는 유명한 약·영양제의 개발과정이나 히스토리를 조명합니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그룹 투애니원(2NE1) 박봄의 소셜미디어 논란으로 최근 재조명된 약이 있다. 박봄은 지난 3일 편지를 공개하며 "또 난리날까봐 조심스럽지만 Adderall(애더럴) 향정신성이라고 알려진 약이 마음에 걸린다"며 "그거 마약 아니다. 나는 주의력결핍(ADD) 환자"라고 밝혔다.
'애더럴'은 암페타민 성분의 복합제제다. 암페타민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ADHD와 기면증 등에서 치료 목적으로 승인됐지만 한국에서는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로, 중독 위험과 남용 가능성이 커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애더럴의 역사는 20세기 초 각성제 연구에서 시작된다. 1929년 미국 생화학자 고든 앨리스가 알레르기 치료제를 연구하던 과정에서 암페타민 계열 물질을 합성하면서다. 이 물질은 이후 코막힘 치료제 형태로 개발돼 1930년대 '벤제드린'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흡입형 약물을 사용하면 부비강이 뚫리는 효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가 줄어드는 강한 각성 효과가 나타났다.
이 약물은 곧 군사 영역에서 주목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각국 군대는 병사의 피로를 줄이고 전투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암페타민을 사용했다. 특히 아돌프 히틀러 정권 시기의 독일군은 메스암페타민 제제인 '페르비틴'을 대량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물을 복용한 병사들이 장시간 잠을 자지 않고도 활동하며 더 대담하게 행동한다는 보고가 이어지면서 암페타민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전쟁 이후에도 장시간 노동을 하는 산업 노동자나 장거리 비행 조종사, 심지어 재즈 음악가들까지 각성 효과를 위해 이 약물을 사용했고, '스피드 드러그'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이후 연구자들은 암페타민이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에 주목했다. 주의력이 부족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주의력결핍장애 환자에게 오히려 집중력 향상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치료제로의 개발이 진행됐다. 그 결과 1990년대 미국 제약사가 여러 암페타민 염을 혼합해 만든 약물이 애더럴이다. 이 약은 덱스트로암페타민과 레보암페타민 등 네 가지 암페타민 염을 결합한 제제로, 뇌에서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증가시켜 집중력과 각성 상태를 높인다. 미국 FDA는 1996년 애더럴을 ADHD 치료제로 승인했다. 임상 연구에서는 어린이 환자의 약 70~80%, 성인의 약 70%에서 증상 개선 효과가 보고됐다.
하지만 강력한 각성 효과는 의료 목적을 넘어선 남용으로 이어졌다. 1980~90년대 미국 일부 부유층 가정에서는 성적 향상을 위해 학생들에게 이 약을 복용시키는 사례가 문제가 됐다. 대학가에서도 시험 기간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스터디 드러그'로 알려지면서 남용 사례가 늘었다. 한 조사에서는 미국 대학생의 약 3분의 1이 시험 준비 과정에서 이런 각성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버드와 예일 등 이른바 아이비리그 대학에서도 이 약물이 남용된다고 알려졌는데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시험 기간이면 관련 언급이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뿐 아니라 금융업계나 프로그래머, e스포츠 선수 등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직업군에서도 사용 사례가 논란이 됐다. 2015년 인기 게임 대회인 카운터 스트라이크 e스포츠 경기에서는 한 선수가 애더럴 복용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후 국제 e스포츠 대회에서 도핑 검사 대상 약물로 포함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한때 '머리 좋아지는 약'으로 알려지며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특히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부 학부모들이 성적 향상을 기대하며 불법 유통된 약물을 구해 자녀에게 복용시켰다는 이야기가 퍼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애더럴이 불법 약물로 지정돼 있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함께 암페타민 계열 물질이 마약류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대신 국내 ADHD 치료에는 메틸페니데이트 성분 약물이 주로 사용된다.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암페타민과 달리 메틸페니데이트는 분비된 도파민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작용을 해 약효가 비교적 부드럽고 중독 위험이 낮다고 평가된다.
애더럴은 강한 중추신경 자극 효과 때문에 부작용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불면증, 식욕 감소, 불안, 짜증, 두통, 심박수 증가 등이 보고된다. 고용량 복용이나 장기 남용 시에는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질 수 있고, 불안장애나 우울증 같은 정신적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심한 경우 환각이나 발작, 심장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에서도 애더럴은 남용 위험이 높은 통제 약물로 분류돼 엄격한 처방 관리가 이뤄진다.
무엇보다 환자가 아닌 사람이 복용했을 때 실제 인지 능력이 크게 향상된다는 근거는 제한적이다. 2018년 학술지 'Pharmacy'에 실린 연구에서는 ADHD가 없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애더럴과 위약을 비교했는데, 약물을 복용한 그룹에서 혈압과 심박수 상승 같은 각성 반응은 나타났지만 인지 능력 자체의 향상은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참가자들은 약을 복용했을 때 자신이 더 잘 수행했다고 느끼는 경향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애더럴 남용이 단순히 약물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도 연결돼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무한경쟁사회에서 각성제는 잘못된 용도로 사용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며 "약이 치료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면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