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무기 쥔 행동주의펀드…3월 정기 주총 전면전 열린다


이사 충실의무 주주 확대 개정 후 첫 주총…자사주 소각 등 전방위 압박

국내외 행동주의펀드들은 정기 주주총회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3월을 맞아 국내 주요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서예원 기자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주총) 시즌이 다가오면서 자본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거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사회적 화두로 부상하면서 제도적 명분을 확보한 행동주의펀드들의 공세가 어느 때보다 거세질 전망이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요 상장사를 대상으로 자사주 소각, 이사회 구조 개편 등을 담은 주주제안서를 잇달아 발송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LG화학이다. LG화학 지분 0.67%를 보유한 영국계 헤지펀드 팰리서캐피탈은 최근 LG화학 이사회를 상대로 주주가치 제고안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팰리서캐피탈이 배포한 주주제안서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LG화학의 상황을 '심각한 수준의 주주가치 디스카운트'라고 규정하며 고강도 압박에 나섰다.

팰리서캐피털이 지적하는 핵심 문제는 LG화학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 구조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지분 약 80%에 육박하는 1억8000만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6일 종가 기준 약 87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정작 모회사인 LG화학의 시가총액은 같은 날 22조원대에 그쳐 자회사의 가치가 모회사보다 3배 이상 높은 역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팰리서캐피탈은 LG화학을 상대로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 선임독립이사 제도 시행 등을 요구 중이다. 또 자사주 소각을 회피하기 위해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소수주주 권익 보호도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토종 행동주의펀드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코웨이에 지속적으로 주주서한을 보내온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이번 주총에서 방준혁 코웨이 사내이사의 이사회 의장직 사임과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정관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주주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이사회가 구성돼야만 진정한 주주가치 제고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DB손해보험에도 위험 조정 수익성 중심의 자본 배분 정책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역시 KCC와 태광산업을 상대로 공세를 펼친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먼저 KCC에 보유 중인 삼성물산 주식을 유동화해 차입금을 상환하고 남은 재원으로 자사주를 소각할 것을 제안하면서도, 태광산업에는 보다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기업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된 만큼 차라리 대주주가 소수주주 지분 전량을 매입해 자진 상장폐지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배수진을 쳤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2회 국회(임시회) 8차 본회의에서 3차 상법 개정안이 찬성 175표 기권 1표로 통과되고 있다. /남용희 기자

행동주의펀드들이 이처럼 공세적 요구를 쏟아낼 수 있는 배경에는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한 상법 개정 논의에 있다. 올해 3월 주총은 기존 상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됐으나 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한 후 처음 열리는 정기 주총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기존 상법에서는 이사가 대주주의 이익을 우선하는 결정을 내려도 회사의 직접적 손해가 없다면 일반 주주들이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나 개정된 상법에서는 이사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 명문화되면서 행동주의펀드들이 이사회 선임 과정의 투명성 확보나 부당한 자본 거래에 대해 강력한 법적 견제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는 해석이다. 행동주의펀드들은 이런 제도적 변화를 바탕으로 상장사를 압박하며 표 대결의 명분을 쌓고 있다.

반면 공세를 받을 상장사들은 이번 주총에서 행동주의펀드의 요구가 전문화되는 만큼 논리적인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 기업들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주주 환원책을 명문화하는 등 선제적 조치에 나서는가 하면, 행동주의펀드들의 과도한 경영 참여 요구가 장기적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주총은 국내 자본시장 거버넌스가 한 단계 진화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단순한 표 대결을 넘어 이사회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얼마나 충실히 대변하는가를 입증해야 하는 새로운 경영 문화가 정착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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