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銀 '기은 장민영·산은 박상진' 내부통 전면 배치…'생산적 금융' 속도전


기은·산은 나란히 내부 출신 수장…인사 메시지는 '조직 이해도', 평가는 결국 '실행력'

장민영 IBK기업은행장(왼쪽)과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 모두 수십 년간 해당 조직에 몸담은 정책금융통이다. /김태환·이선영 기자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정부가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에 나란히 내부 출신 수장을 앉히며 국책은행 인사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장민영 IBK기업은행장과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 모두 수십 년간 해당 조직에 몸담은 '정책금융통'으로, 이번 인선은 외부 수혈보다 조직 이해도와 실행력을 앞세워 '생산적 금융'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22일 장민영 전 IBK자산운용 대표를 신임 IBK기업은행장으로 임명 제청했다. 앞서 지난해 9월 9일에는 박상진 전 산업은행 준법감시인을 신임 KDB산업은행 회장으로 임명 제청했다. 장 행장은 기업은행법에 따라 금융위원장 제청 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밟았고, 박 회장 역시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른 같은 방식으로 선임됐다.

금융위가 내놓은 인선 배경도 닮아 있다. 금융위는 장 행장에 대해 기업은행과 IBK자산운용에서 약 35년간 재직하며 금융시장 이해도와 리스크관리 전문성을 쌓았고,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강화와 첨단전략산업 벤처기업 투·융자를 통해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이끌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박 회장에 대해서도 산업은행에서 약 30년간 재직하며 기아그룹·대우중공업·대우자동차 태스크포스(TF)팀, 법무실장, 준법감시인 등을 거친 정책금융 전문가로, 첨단전략산업 지원 등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끌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두 인선 모두 '새 얼굴'보다 '조직을 아는 사람'에 무게가 실린 셈이다.

이 같은 인사 기조는 올해 정책금융의 무게감과도 맞닿아 있다.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2026년 정책금융 계획'을 확정하면서 산은·기은·신보·기보의 총 공급규모를 252조원으로 제시했고, 이 가운데 150조원 이상을 5대 중점분야에 집중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책금융기관에 요구하는 역할 자체가 커진 상황에서 낯선 외부 인사보다 내부 실무에 정통한 인물에게 속도와 연속성을 맡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026년 정책금융 계획을 확정하면서 산은·기은·신보·기보의 총 공급규모를 252조원으로 제시했고, 이 가운데 150조원 이상을 5대 중점분야에 집중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임영무 기자

◆ '조직을 아는 수장'에 실린 정부 메시지

장민영 행장이 맡은 과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의 최전선에서 기업은행의 존재감을 다시 키우는 일이다. 장 행장은 2월 20일 취임식에서 2030년까지 총 300조원을 공급하는 'IBK형 생산적 금융 프로젝트'를 내걸었다. AI·반도체·에너지 등 미래 신산업과 혁신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기술력과 성장성을 반영하는 여신 심사 체계로 혁신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7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과 'IBK 국민성장펀드 추진단'도 함께 제시했다. 결국 장 체제의 핵심은 현장형 정책금융의 촘촘함과 정밀도를 얼마나 끌어올리느냐에 있다.

박상진 회장의 과제는 한층 거시적이다. 박 회장은 지난달 25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적 운영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산업은행은 5년간 15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국민성장펀드 운영기관으로, 3조4000억원 규모의 '신안 우이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1호 사업으로 승인했고 올해 예정된 7개 메가프로젝트, 30조원 규모 승인 목표를 상반기 내 조기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향후 5년간 총 250조원을 투입하는 'KDB NEXT KOREA' 프로그램도 내놨다. 세부적으로는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100조원, 지역금융 확대 75조원, 주력산업 지원 50조원, 국민성장펀드 연계 대출·투자 25조원이다. 박 회장에게 주어진 시험지는 '대출을 해주는 은행'에서 그치지 않고, 산업 재편과 모험자본 공급의 마중물 역할을 얼마나 빠르게 해내느냐에 맞춰져 있다.

기은과 산은이 각각 내건 중장기 생산적 금융 계획을 단순 합산하면 300조원과 250조원을 더해 550조원이다. 두 기관 모두 '공급 확대'를 선언한 만큼, 앞으로 시장의 관심은 단순한 계획 발표보다 실제 집행 속도와 자금 배분의 정밀성에 쏠릴 가능성이 크다.

다만 내부 출신이라는 상징만으로 조직 안정과 성과가 자동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장 행장은 1월 22일 제청 이후 곧바로 본격 업무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으로 공식 취임이 2월 20일로 미뤄졌다. 기업은행 노사는 2월 13일 임금 교섭안에 최종 합의했고, 노조의 출근 저지는 22일 만에 종료됐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라도 노사 갈등과 조직 장악력이라는 현실 과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박 회장 역시 내부 출신 기대감만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산업은행은 첨단전략산업 육성, 지역금융 확대, 주력산업 구조개편, 석유화학 등 취약 업종 재편까지 동시에 떠안고 있다. 실제로 박 회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HD현대케미칼 통합법인 지원을 위해 1조원 신규 자금 지원 계획까지 공개했다.

이번 인사의 진짜 의미는 인사 그 자체보다 그 이후에 있다. 정부는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에 각각 중소기업 금융과 산업정책 금융의 축을 맡기면서 두 기관 모두에 '생산적 금융'이라는 공통 과제를 던졌다.

장민영 행장이 현장형 정책금융의 촘촘함을 키울 수 있을지, 박상진 회장이 전략산업 지원과 산업 재편의 속도를 높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책은행의 성패는 결국 조직 친화력이 아니라, 위기 국면에서 필요한 곳에 자금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흘려보내는 실행력으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관료 출신 '낙하산' 논란 없이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가 선임된 점은 긍정적"이라며 "조직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경영 공백 없이 기존 사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하며 조직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이 투입하는 550조원의 자금이 우리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는 결국 수장들의 협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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