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환율 변동성과 가계부채 부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은행 총재 인선 시계가 급해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 임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연임론과 후임 하마평이 동시에 확산하는 모습이다. 시장은 인물보다 금리·성장·금융안정을 묶어 어떤 정책조합을 내놓을지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 총재의 임기는 4년으로 지난 2022년 4월 21일 취임한 이 총재의 임기는 오는 4월 20일 종료된다. 총재는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 4년에 1회 연임이 가능하다. 남은 시간이 50여 일 수준으로 줄면서 인선 윤곽이 언제 드러나느냐가 금융시장 변수로도 읽힌다.
금융권에서는 남은 일정과 청문 절차를 감안할 때 이르면 2월 말부터 3월 중순 사이 후임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선이 늦어질수록 시장은 총재 공백 자체보다도 메시지 변화 가능성에 먼저 반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연임론이 부상하는 배경에는 '정책 연속성' 수요가 깔려 있다. 고물가·고금리 국면에서 긴축과 완화의 완급을 조절해온 기조가 흔들릴 경우 환율·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연임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직전 한은 수장이었던 이주열 전 총재는 연임을 통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8년 간 한은을 이끌었다. 박근혜 정부 임명 후 문재인 정부에서 재지명 사례로 '정권 교체 후 연임'이라는 이례성을 남겼다. 앞서 김유택 전 총재, 김성환 전 총재 등이 연임된 바 있어 이 총재 연임이 성사될 경우 한은 역사 상 4번째 총재 연임으로 기록된다.
◆ 이 총재 '미스터 오지랖' 평가도…통화정책 넘어 사회 이슈까지
이 총재를 둘러싼 평가의 키워드 중 하나는 '오지랖'이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 공식 연설에서 "통화정책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밝히다 보니 '오지랖이 넓다'는 농담 섞인 말을 듣기도 한다"고 직접 언급했다. 그가 전임 총재들과 달리 공개 발언을 적극적으로 해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행보가 한은의 변화·혁신을 이끌었다는 해석도 있다.
조직 내부 평가도 인선 국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은 노조가 지난해 말 조합원 11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이 총재 재임 기간 '전반적인 정책 실적'에 대해 응답자의 61%가 우수하다고 답했다. 이 총재가 물가·금융안정 대응과 함께 교육·노동·인구 등 구조개혁 이슈까지 공론화해 한은의 역할을 넓혔다는 진단도 나온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자 시장에서는 정책 연속성 차원에서 이 총재 연임 가능성을 거론하는 시각도 나온다. 특히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가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지명된 가운데 '국제 채널'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IMF 근무 시절부터 워시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총재가 대미 소통에 강점이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 하마평의 공통분모는 '국제통'…외부·내부 후보군 모두 대외 역량 부각
후임 하마평은 대외 변수에 강한 인물 쪽으로 모이는 분위기다. 외부 인사로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전 금통위원),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정책국장 등이 거론된다. 내부 인사로는 이승헌 전 한국은행 부총재가 대표적으로 언급되며, 서영경 전 금융통화위원도 한은 내부 출신 후보군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고승범 전 위원장은 금통위원으로서 연임 경험이 있고, 금융위에서 금융정책국장·사무처장 등 핵심 보직을 거친 '정책통'으로 분류된다. 재무부(현 기재부 전신) 국제금융 부문 근무와 국제금융기구 파견 등 대외 이력도 거론된다.
신현송 국장은 총재 인선 때마다 꾸준히 언급되는 인물이다. 프린스턴대 교수로 국제금융 분야에서 활동했고,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을 지낸 데 이어 BIS에서 조사·통화정책 관련 핵심 직책을 맡아온 경력이 거론된다.
내부 후보군으로는 이승헌 전 부총재와 서영경 전 금통위원이 '한은맨' 축으로 거론된다. 이 전 부총재는 금융시장·정책기획·국제국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치며 통화정책과 국제금융 경험을 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 전 금통위원은 한은 최초의 여성 임원 출신으로 금통위원까지 오른 이력이 강점으로 언급된다.
다만 최근 금융권 주요 보직 인선에서 '예상 밖' 카드가 등장한 전례를 들어 한은 총재 역시 의외의 인물이 지명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와 맞물려 대통령실 경제라인인 하준경 경제성장수석 이름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차기 총재가 맞닥뜨릴 환경은 복합적이다. 성장·내수 흐름이 흔들릴 경우 경기 대응이 필요하지만 가계부채·부동산·환율 변동성이 동시에 부각되면 금융안정 측면의 제약도 커진다.
이 총재도 23일 오후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 질의에 "건설경기가 예상보다 나쁜 쪽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수출 개선을 언급하는 등 경기 판단을 내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연임이든 교체든 핵심은 정책조합의 연속성"이라며 "총재 메시지가 바뀌면 환율·채권 변동성이 먼저 반응할 수 있어 인선 타이밍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하마평이 '국제통' 쪽으로 모이는 건 대외 변수가 크기 때문"이라며 "금리보다 환율과 자금흐름을 함께 볼 수 있는 역량이 시장의 관심사"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