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유연석 기자] 정부가 오는 4월부터 하이볼 등 저도수 혼성주에 대한 주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주류업계 내 기업 규모에 따른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침체된 주류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층의 소비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세제 혜택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대형 주류사와 중소 제조사 간의 온도 차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 내년 4월부터 주세 30% 한시 감면…'연 400㎘' 한도 설정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오는 4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알코올 도수 8.5도 이하, 불휘발분 2도 이상인 혼성주류에 대해 주세를 30% 감면한다. 기존 72%의 세율을 적용받던 혼성주에 세제 혜택이 적용되면서 교육세와 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한 소비자가격은 이론적으로 약 15% 인하될 요인이 발생한다.
다만 이번 감면 혜택은 제조장별로 연간 반출량 400㎘까지만 적용된다. 이 같은 한도 제한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실질적 수혜 폭을 가르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 대형사 입장에서 400㎘는 공장 1곳의 월간 생산량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대형사는 혜택 범위가 미미한 반면, 생산 규모가 작은 중소사에는 전체 물량을 포괄할 수 있는 수치다.
◆ 경영난 중소 브루어리 기사회생 '기회'…대형사는 '글쎄'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중소 수제맥주 및 하이볼 제조사들이 될 전망이다. 한때 수제맥주 열풍을 주도했던 세븐브로이, 제주맥주 등은 최근 인기가 식으면서 경영난을 겪어왔다. 이들은 가동률이 떨어진 맥주 설비를 활용해 하이볼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매출 다각화를 시도 중이며, 이번 세금 감면 조치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가뭄의 단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연간 400㎘ 한도는 대기업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지만, 중소 제조사들에게는 전체 생산량을 커버할 수 있는 충분한 규모"라며 "정부가 사실상 중소 규모 제조사를 지원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대형 주류사들은 제품 포트폴리오와 생산 체계 문제로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우선 오비맥주는 맥주가 주력이라 해당 사항이 없고, 하이트진로 역시 감면 대상인 '저도수 증류주 기반 혼성주' 제품이 거의 없다.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스카치하이' 등 일부 제품이 대상이 되지만 매출 비중이 미미하고, 주력 제품인 '레몬진' 등은 주세법상 '과실주'로 분류되어 이번 감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무엇보다 연간 400㎘라는 한도는 대량 생산을 하는 대기업 입장에서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대기업이 주력하는 소주 시장은 이번 감세에서 철저히 배제되면서, 오히려 하이볼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소주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 '무늬만 하이볼' 제외 논란…소비자 가격 인하 실효성 의문
소비자들이 편의점에서 흔히 접하는 캔 하이볼이 모두 저렴해지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 RTD(Ready To Drink, 완제품형 주류) 하이볼 중 상당수는 레몬이나 자몽 등 과즙이 함유되어 주세법상 '과실주(세율 30%)'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이미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어 이번 '혼성주(세율 72%→감면)' 감세 대상이 아니다.
유통 구조상의 한계도 지적된다. 제조사가 세금 인하분을 출고가에 반영하더라도 유통 마진과 원부자재 가격 상승분이 이를 상쇄할 경우 실제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하 폭은 정부 예상치인 15%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3년이라는 한시적 감면 기간은 기업들이 장기적인 설비 투자나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는 데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제조사가 세금 인하분을 출고가에 반영해야 소비자 가격이 내려가는데, 혜택을 받는 제품이 제한적이고 유통 마진 구조상 실제 체감 인하 폭은 낮을 수 있다"며 "감면 대상 확대와 유통 구조 개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정책 효과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ccbb@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