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성은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오너 중심 경영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 체제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신약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연구개발(R&D) 전문성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경영 체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 신뢰 확보와 지배구조 리스크 관리 역시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명인제약은 창업주 이행명 회장 중심 경영에서 전문경영인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한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 당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공언한 명인제약은 다음 달 정기 주주총회를 거쳐 이관순 전 한미약품 부회장과 차봉권 명인제약 영업 총괄관리 사장을 공동대표로 선임할 예정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한미약품에서 약 40년간 근무하며 신약 개발과 기술수출을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대표이사 재임 시절인 2015년에는 존슨앤드존슨(J&J) 등 글로벌 빅파마를 상대로 핵심 파이프라인을 조 단위 규모로 기술수출하며 국내 제약사의 글로벌 위상을 끌어올렸다. 명인제약은 이 같은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과 해외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바이오 플랫폼 기업 알테오젠도 창업주 단독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경영 구조를 재편했다. 지난해 12월 선임된 전태연 대표는 2020년 합류 이후 사업개발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총괄하며 기술이전 성과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실제 알테오젠은 전 대표 취임 한 달 만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자회사와 피하주사(SC) 제형 기술 'ALT-B4'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성과를 가시화했다.
간암 신약 개발을 추진 중인 HLB그룹 역시 전문경영인 전면 배치에 나섰다. 진양곤 회장에 이어 대표직을 맡은 김홍철 HLB이노베이션 대표는 미국에서 CAR-T 치료제를 개발 중인 자회사 베리스모를 지원하며 글로벌 R&D 역량 강화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HLB는 해당 인사 단행 이후 약 두 달 만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간암 신약 허가를 재신청하며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제네릭(복제약) 중심의 안정적인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대규모 자금과 장기 투자가 필요한 신약 개발 중심 구조로 이동하면서 R&D를 이해하는 경영자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오너 개인의 리스크를 기업 가치와 분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그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오너의 사적 리스크나 의사결정 논란이 기업 신뢰도와 파이프라인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전문경영인 중심 구조는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력이나 기술수출 협상 과정에서 신뢰도를 높이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켜 왔다는 점도 국내 기업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다. 머크(MSD) 등 주요 글로벌 제약사는 가족 경영에서 벗어나 R&D와 경영을 분리한 구조를 통해 신약 개발 경쟁력을 강화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제네릭에서 신약으로, 오너 중심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이동하는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