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만 민간?…금감원, 사실상 '준공공기관' 관리 틀에 들어갔다


금융위가 엄정 경영평가·소비자보호 이행 점검…독립성·책임성 줄다리기 본격화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9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고 금융감독원 공공기관 지정을 다시 한 번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뉴시스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또다시 공공기관 지정은 피하면서도 경영 관리·감독은 공공기관에 버금가게 받게 됐다. 정부가 금감원의 공공성·책임성과 감독 독립성 사이에서 '조건부 유보'라는 절충안을 택한 결과다. 한때 '감독받지 않는 감독기관'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금감원이 사실상 '준(準) 공공기관' 수준의 관리 체계로 들어가면서 감독 자율성과 정치적 영향력 사이 경계선도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9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고 금융감독원 공공기관 지정을 다시 한 번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편입하면 예산·인사·조직에서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지만 금융감독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훼손될 우려도 크다는 점을 감안해 '지정 유보+관리 강화' 안을 선택한 것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회의에서 "공공기관 지정을 통해 금감원 운영 및 업무 전반의 공공성과 투명성이 제고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주무부처 중심의 현행 관리·감독체계와의 중첩으로 자칫 자율성과 전문성 훼손이라는 비효율적 결과가 초래될 우려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공운위는 대신 △정원·조직·공시·예산·복리후생 등 경영관리 항목을 공공기관 수준 이상으로 관리·감독 강화 △기관장 업무추진비 세부 내역 공개 △검사·인허가·제재 등 금융감독 업무의 투명성·공정성을 높이는 쇄신 방안 마련·시행 △지난해 말 발표된 금융소비자보호 개선 방안의 충실한 이행 등을 조건으로 달았다. 금융위는 금감원에 대해 공공기관에 준하는 엄정한 경영평가를 실시하고, 이행 정도를 점검해 내년 공운위에서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결국 법적 지위는 '비(非) 공공기관'으로 남기되, 정원·조직·복리후생·경영평가 등 관리·감독은 공공기관 이상 수준으로 틀을 씌우는 셈이다.

◆ 정원·조직·복리후생·업무까지…촘촘해지는 관리 틀

이번 결정으로 금감원은 인력·조직·예산·복지 등 내부 경영 전반에서 보다 촘촘한 규율을 적용받게 된다. 우선 정원·조직 등 기본 골격을 바꿀 때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와의 사전 협의가 강화되고, 공공기관 알리오(ALIO) 시스템에 준하는 수준의 경영 정보와 복리후생 관련 항목을 공개해야 한다. 기관장 업무추진비도 세부 내역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향이다.

업무 측면에서도 검사·인허가·제재 등 핵심 감독 기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쇄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금감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금융소비자보호 개선 방안 역시 이행 상황이 금융위의 경영평가·공운위 재검토 과정에서 주요 체크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표면적으로는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공공기관 수준 이상으로 관리한다는 구조가 된 만큼, 향후 금감원의 예산 사용·조직 개편·복리후생 제도, 검사·제재 관행은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기업·준정부기관 못지않게 정치·사회적 감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 2007년 지정·2009년 해제…'조건부 유보' 누적 효과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논쟁은 새로울 게 아니다. 금감원은 1999년 출범 후 2007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금융감독의 독립성 훼손 우려가 제기되며 2009년 지정이 해제됐다. 이후 2018년과 2021년 공운위에서 공공기관 편입 여부가 다시 논의됐지만, 두 차례 모두 '유보'를 택하면서 대신 조직·인사·경영평가에 각종 조건을 덧붙여 왔다.

예컨대 2018년에는 3급 이상 간부 비중을 45%에서 35%로 낮추고, 직급 체계를 슬림화하라는 주문과 함께 금융위가 금감원 경영실적을 평가하는 틀을 강화하라는 조건이 붙었다. 2021년에는 사모펀드 사태를 계기로 제재·소비자보호 기능을 개선하고, 내부 통제와 인사 시스템을 손보라는 과제가 부여됐다. 이번 공운위 결정은 여기에 정원·조직·복리후생·업무 쇄신·소비자보호 이행 등 '공공기관형' 조건을 또 한 번 덧씌운 셈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 안팎에서는 "법적 공공기관은 아니면서, 공공기관이 갖는 제도적 보호(임금·복지·연금 등) 없이 관리·감독만 누적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이 공공기관 지정을 피한 배경에는 전문성·민간 경쟁력 훼손에 대한 우려도 깔려 있다. /더팩트 DB

◆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공공기관 이상"…인력 유출 우려도

금감원이 공공기관 지정을 피한 배경에는 '전문성·민간 경쟁력 훼손'에 대한 우려도 깔려 있다. 금감원은 설립 목적상 예산 대부분을 금융회사 분담금으로 충당하고, 시중은행·증권사·보험사 등과 같은 인력 시장에서 감독 인력을 확보·유지해야 한다. 공공기관으로 묶일 경우 임금·성과급·복리 수준이 타 시중 금융회사 대비 크게 떨어져 우수 인력 확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은 꾸준했다.

실제 인력 유출 조짐은 이미 통계로도 드러난다. 금감원 정규직 인력은 최근 2년 사이 약 2400명 선에서 소폭 줄어 지난해 기준 2392명에 그쳤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 금감원을 떠난 직원은 400명 안팎으로, 해마다 100명 수준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팀장·수석·선임 조사역인 3·4급 실무 간부 비중이 절반을 넘고, 상당수가 은행·증권·보험·핀테크 등 민간 금융회사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파악된다.

평균 근속연수와 보수도 개선보다는 후퇴에 가깝다. 금감원 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2020년 15.7년에서 2025년 12.1년 수준으로 짧아졌고, 1인당 평균 연봉(성과상여금 제외 기준)은 2023년 1억1000만원대에서 2025년 1억600만원 안팎으로 소폭 줄었다. 같은 기간 4대 금융지주 평균 보수는 1억6000만원대 중반으로, 금감원이 민간 금융사와의 보수 격차를 좁히기는커녕 되레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공공기관 이상으로 조직·복리후생·예산을 관리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굳어지면 인력 유출 우려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금감원 안팎의 공통된 고민이다.

◆ 독립성 vs 책임성…'감독받는 감독기관' 새 시험대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각에선 이번 결정을 두고 "금감원이 더 이상 '감독받지 않는 감독기관'은 아니다"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다. 공공기관 지정 대신 사실상 공공기관 수준의 감독·경영평가를 받게 된 만큼, 검사·제재·인허가 과정에서의 자의적 판단이나 '봐주기' 논란을 줄이고 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에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반대로 금융권에선 "공공기관의 족쇄는 다 받으면서도, 정작 공공기관이 갖는 예산·인사 안전망은 없는 애매한 지위가 더 굳어졌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기업·준정부기관은 공운위 심사와 동시에 인건비·복리후생·연금 등에서 일정한 보호와 예측 가능성을 갖지만 금감원은 이번에도 그 문턱은 넘지 못한 채 공공기관식 평가와 감시만 추가로 받아야 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내년 공운위 재논의까지 1년 동안 금감원이 어떤 쇄신안을 내놓고, 금융위가 어떤 기준으로 경영평가를 할지에 따라 향후 지위와 관리 체계의 방향도 달라질 전망이다. 검사·제재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편, 소비자보호·사모펀드·디지털자산 감독 로드맵, 내부 인사·조직문화 혁신이 어느 수준까지 진전되느냐가 관심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공기관 지정은 피했지만, 정원·조직·복리·경영평가까지 공공기관 틀로 관리받게 되면서 금감원은 사실상 '감독받는 감독기관'이 됐다"며 "중요한 건 이런 통제가 정치적 압박 수단이 아니라 감독 독립성과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력 유출과 조직 피로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일 것"이라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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