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문화영 기자] LG생활건강이 지난 20여년간 성장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아온 인수합병(M&A)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 그동안 인수해온 음료와 화장품이라는 양대 축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기존의 해외 대형 브랜드 인수 방식에서 벗어나 실속 있는 국내 '인디 브랜드'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이 같은 전략 변경이 LG생활건강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의 인수 전략은 2000년대 중반 음료 사업에서 본격화됐다. 2007년 호주 코카콜라아마틸로부터 코카콜라음료(한국코카콜라보틀링)을 약 3853억원에 인수했으며 2022년에는 기존 5년 단위로 갱신하던 판매 계약을 10년으로 연장하며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했다.
2010년에는 당시 국내 3위 음료업체였던 해태htb(해태음료)를 인수했다. LG생활건강은 아사히맥주 보유 지분 58%를 비롯해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 100%를 인수했으며 순차입금 1230억원까지 떠안았다. 당시 회사 측은 "해태음료가 보유하고 있는 영업·생산·물류 등의 인프라가 더해지면서 자회사인 코카콜라음료와 시너지 효과를 통해 음료사업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장품 브랜드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2009년 약 3500억원을 들여 '더페이스샵(THEFACESHOP)'을 품었고, 2014년에는 CNP(차앤박)코스메틱스 지분 86%를 약 542억원에 인수하며 기초 스킨케어 라인업을 강화했다. 2017년에는 태극제약 지분 80%를 약 446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의약외품과 기능성 제품군을 보강했다.
최근 들어서는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인수가 두드러졌다. 2019년 북미 화장품 기업 뉴에이본(1450억원), 2020년 피지오겔(Physiogel) 아시아·북미 사업권(1900억원), 2021년 미국 패션 헤어케어 브랜드를 보유한 보인카 지분 56%(1170억원), 2022년 더크렘샵(The Creme Shop) 지분 65%(1458억원)를 잇달아 인수했다.
2023년에는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색조 브랜드 '힌스'를 보유한 비바웨이브 지분 75%를 약 425억원에 사들이며 일본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냈다. 이들 인수의 공통점은 K-뷰티 인기를 기반으로 현지 브랜드와 유통망을 확보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 녹아져 있다.
그러나 인수 후 현재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음료와 화장품 모두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은 지난해 매출액 6조3555억원, 영업이익 170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6.7%, 62.8% 감소한 수치다.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4728억원, 영업손실은 727억원이다. 매출액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8.5% 하락했으며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뷰티(화장품) 부문의 성적표가 뼈아프다.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0% 하락한 566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은 814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연간 매출은 2조 3500억원으로 16.5% 감소했으며 영업손실은 976억원을 기록했다.
'캐시카우'로 평가받던 음료 부문 역시 내수 불황과 비용 상승 여파로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은 38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7% 하락했다. 영업손실은 99억원으로 인력 효율화 관련 일회성 비용이 발생해 적자 전환했다. 연간 매출은 1조7707억원, 1420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2.9%, 15.5% 감소했다. 이에 지난해 해태htb 매각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아직 진행 사항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러한 실적 부진 속에서 LG생활건강의 차기 인수 후보로 국내 스킨케어 브랜드 '토리든'이 거론되면서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2015년 설립된 토리든은 저분자 히알루론산 라인을 앞세워 MZ세대 사이에서 인지도를 쌓은 K-뷰티 인디 브랜드다. 2024년 매출 1860억원, 영업이익 52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176%, 425%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 올리브영에서 연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6개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LG생활건강이 북미 중심의 M&A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성장성이 검증된 국내 인디 브랜드로 전략을 선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유통망에 비해 MZ세대를 겨냥한 스킨케어 경쟁력이 약한 상황"이라며 "검증된 브랜드를 통한 포트폴리오 강화가 시급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아직 인수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LG생활건강은 지난달 27일 공시를 통해 "뷰티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분 인수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으나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토리든 측 또한 권인구 대표의 엑시트와 관련해 답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