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풀자 환율 쑥…증권사만 죄는 엇박자 대응?


환율 다시 1480원대…민생지원금 등 유동성 확대 영향
정부 시선은 다시 '서학개미'로…증권사 감독 가능성 커져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3원 오른 1480.4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환율이 장중 1480원을 웃돈 것은 지난달 24일 이후 처음이다. /인천국제공항=송호영 기자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80원대로 치솟으면서 금융당국의 환율 대응 기조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민생지원금 지급 등으로 시중 유동성이 확대된 이후 환율 상단 압력이 재차 커졌지만, 당국의 잇단 구두개입과 세제·제도 보완에도 원화 약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해외 주식 거래를 축으로 한 '증권사 압박'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환율 불안의 구조적 배경인 유동성 확대와 수급 요인은 외면한 채 증권사만 옥죄는 대응이 오히려 시장 왜곡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3원 오른 1480.4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환율이 장중 1480원을 웃돈 것은 지난달 24일 이후 처음이다. 당시 환율은 1482원대까지 치솟았다가 외환당국의 구두개입 영향으로 하루 만에 33.8원 급락해 1449.8원으로 마감한 바 있다.

이후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 협의체를 신설하고, 기획재정부가 국내 시장 복귀 계좌(RIA)에 대한 세제 지원과 기업의 해외 자회사 수입배당금 익금 불산입률 상향 조치를 발표하면서 달러 매도 심리가 일부 확산됐다. 그러나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면서 환율은 다시 상단을 위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환율 상승의 배경으로 '수급 요인'을 더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최근 환율 급등은 해외 주식 거래 자체보다 정부의 민생지원금 지급 등으로 유동성이 급격히 확대된 영향이 더 크다"며 "현금성 재원이 풀리면 단기적으로는 소비로 흡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금융권으로 되돌아와 주식과 해외 자산 투자로 이동하면서 달러 수요를 자극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근본 원인은 유동성 공급인데 이를 외면한 채 증권사와 개인 투자자만 압박하는 것은 구조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환율 흐름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원·달러 환율은 한동안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초에는 1300원대까지 내려오며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냈고, 9월 초까지도 1300원대 후반에서 등락을 이어갔다. 그러나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을 마무리한 10월을 기점으로 환율은 뚜렷한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 10월 이후 상승세로 전환된 환율은 1400원대 중반을 넘어섰고, 지난달에는 장중 1482원대까지 치솟았다. 정책 초기 안정됐던 환율이 대규모 재정 지출 국면과 맞물려 다시 급등 흐름을 보이면서, 시장에서는 유동성 확대와 환율 상승 간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고환율의 주요 원인으로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를 지목하며, 이른바 '서학개미' 자금을 중심으로 한 해외 주식 거래를 다시 관리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다. 정부는 그동안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가 달러 수요를 자극했다는 인식 아래 '국장 유턴'을 유도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이 같은 기조 변화는 증권사들의 영업 현장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미국 주식 무료 수수료 이벤트를 조기에 종료하기로 했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공지를 통해 "금융시장 안정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해 2026년 1월 5일 0시 이후 신규 개설되는 '슈퍼365(Super365)' 계좌에 대해 미국 주식 무료 수수료 이벤트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당초 연말까지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해외 투자 억제를 중시하는 당국 기조를 반영해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해석된다.

해외 투자 억제 기조 속에 메리츠증권이 최근 미국 주식 무료 수수료 이벤트를 예정보다 앞당겨 종료했다. /메리츠증권 홈페이지 캡처

메리츠증권뿐만 아니라 다른 증권사들도 해외 주식 영업과 관련해 잇따라 보수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신규 해외 주식 거래 이벤트를 중단하거나 환전 우대율을 축소했고, 해외 주식 거래 과정에서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 위험과 해당 국가의 정치·통화정책 변화에 따른 변동성 확대 가능성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있다. 해외 주식 마케팅 문구와 이벤트 운영 전반을 재점검하며, 사실상 해외 투자 유입 속도를 조절하는 분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환율 문제의 본질을 비껴갈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환율 상승은 글로벌 달러 강세와 대외 불확실성, 그리고 누적된 유동성 확대의 결과"라며 "해외 주식 거래를 억제하는 방식은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특히 증권사만을 압박하는 정책 기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는 해외 투자 수요를 중개하는 창구일 뿐인데, 환율 불안의 책임이 사실상 전가되고 있다"며 "정책 목표가 환율 안정이라면 달러 수요를 자극하는 구조와 유동성의 흐름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향후 금융당국이 증권사를 대상으로 보다 직접적인 관리·감독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당국은 단순한 구두 경고나 현장 점검을 넘어, 증권사의 외화 포지션과 자본 적정성, 파생상품·외화 연계 상품 운용 전반을 관리 대상에 올릴 수 있다.

특히 해외 주식 거래와 외화증권 비중이 높은 증권사를 중심으로 외화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강화, 해외 옵션 투자 관리, 환율 연계 상품 발행 속도 조절 등이 병행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공식적인 규제보다는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강화를 명분으로 한 '관리성 감독'이 강화되면서, 증권사들의 영업 전략과 수익 구조 전반에 제약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chris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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