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권 지배구조를 '부패한 이너서클'로 직격한 뒤 금융감독원이 8대 금융지주(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농협금융·iM금융·BNK금융·JB금융)를 상대로 지배구조 특별점검에 착수하면서 금융지주 회장 중심 의사결정 구조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점검이 진행되는 국면에서 JB금융 부회장이 취임 9일 만에 사임하면서 금융지주 인사·승계 이슈 전반이 당국의 '검증대'에 오른 모습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19일부터 23일까지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농협금융·iM금융·BNK금융·JB금융 등 8개 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지배구조 특별점검을 일제히 진행 중이다. 금감원은 2023년 마련된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현장에서 형식적으로 이행되거나 운영 단계에서 우회되는지 여부를 집중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점검의 초점은 최고경영자(CEO) 선임·승계 절차와 이사회 견제 기능이다. 금감원은 문제 사례로 △이사회 참호를 구축한 CEO의 셀프 연임 △이사회 및 위원회의 거수기화 △ 사외이사의 실질적 견제·감시 기능 약화 등을 거론하며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대통령의 공개 발언 이후 본격화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9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회장 했다가 은행장 했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10년, 20년씩 하는 모양"이라며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며 계속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찬진 금감원장 역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금융지주 회장 연임 관행을 두고 "연임이 반복되면 차세대 리더십도 골동품이 된다"는 취지로 비판을 이어갔다.
금융위·금감원은 제도 개선 논의도 병행하고 있다. 16일에는 '지배구조 선진화 TF' 첫 회의가 열렸고, TF는 이사회의 독립성 제고, CEO 선임의 공정성·투명성, 성과보수 운영의 합리성 등을 논의하기 위해 출범했다. 금융위는 외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3월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CEO 선임 등 경영승계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도 해결할 것"이라며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폐쇄적으로 운영된다는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누가 보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하고 개방적·경쟁적인 승계 프로그램이 작동될 방안을 마련하겠다. CEO 연임에 대해선 주주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점검 수위'가 점차 높아지는 흐름도 감지된다. 금감원이 BNK금융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수시검사는 당초 일정에서 재차 연장돼 23일까지 진행될 계획으로 전해졌으며, 특별점검 종료 시점과 맞물리면서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가운데 BNK금융지주 이사회는 지난 15일 주주간담회를 열고 주요 주주들의 지배구조 개선 제안에 대해 토론했으며,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사외이사들이 참석해 주주 질문에 응답했다고 밝혔다. BNK금융지주 관계자는 "이번 주주간담회는 이사회가 주주와 함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다각도의 논의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BNK금융의 주주 가치 최우선 의지 표명"이라며 "이날 논의된 내용과 더불어 향후 가시화될 지배구조 개선 TF의 개선안 도입에 앞장서 지배구조 혁신의 시발점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JB금융에서는 백종일 부회장이 지난 9일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한 사실이 14일 공시 등을 통해 알려졌다. 백 전 부회장은 새로 신설된 부회장직을 맡아 김기홍 회장을 보좌할 예정이었으나 취임 직후 물러나 '초단기 사임'으로 분류되는 이례적 사례가 됐다. 다만 사임 배경과 특별점검 간 직접적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반발도 나온다. 금융노조는 특별점검을 두고 표적 감사 중단을 요구하며 '관치금융'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19일 성명을 통해 "최근 금융감독원이 은행지주 지배구조를 문제 삼아 고강도 특별 점검에 나선 것은 금융개혁이라기보다 관치금융의 재현에 가깝다"며 "이는 작년 말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이 결정된 이후 대통령이 금융지주사를 '부패한 이너서클'로 지적하자 금융감독원이 다시 특별점검에 착수한 것으로, 금융감독원의 독립성과 일관성을 스스로 허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금감원은 이번 점검을 통해 사외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객관적·공정하게 대변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의 건전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특별점검 결과와 TF 논의가 맞물리면서 금융지주 회장 선임·승계 절차를 둘러싼 감독·제도 논의가 한층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 이후 감독당국 메시지가 분명해졌다"며 "업계는 '회장 중심 구조'가 견제 장치와 함께 작동하는지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임·승계 시즌이 다가올수록 금융지주들은 후보추천위원회 운영과 사외이사 평가체계를 더 투명하게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