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량 늘어 환율 급등?"…한은 "데이터로 보면 사실과 달라"


M2 증가율 과거 평균보다 낮아…통화량·환율 장기 상관관계도 '미미' 주장
최근 원화 약세는 유동성 아닌 수급·시장심리 영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최근 고환율 현상이 국내 통화 유동성(M2)이 과도하게 늘어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한국은행이 정면으로 반박했다. 통화량 증가율과 환율 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최근 환율 상승을 통화 유동성 과잉으로 설명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최근 원화 약세의 주요 원인은 자본수지와 외환시장 수급 여건, 시장심리 등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20일 블로그를 통해 '최근 유동성 및 환율 상황에 대한 오해와 사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원·달러 환율 상승이 유동성 증가로 인해 나타났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한은은 "최근 일각에서는 국내 통화 유동성이 과도하게 늘어난 것이 원화 약세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주장이 실제 데이터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오히려 비합리적인 환율 절하 기대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통화량과 환율을 둘러싼 논쟁을 △통화량 증가율 △GDP 대비 통화량 수준 △통화량과 환율 간 상관관계 △최근 환율 상승의 실제 배경 등 네 가지로 나누어 종합 분석하고, 통화량이 과도하게 늘어 환율이 상승했다는 주장은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M2 증가율 추이 그래프. /한국은행

우선 한은은 최근 통화량 증가율이 과도하게 높아졌다는 주장 자체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통화량(M2) 증가율은 2022년 이후 빠르게 둔화된 뒤 2024년 들어 다소 반등했지만, 과거 평균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이었던 2020~2021년에는 통화량 증가율이 11~12%까지 치솟았지만, 최근에는 4~5%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다. 이는 팬데믹 이전 장기 평균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며, 통화량이 급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주요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통화량 증가율은 주요 10개국 가운데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주요국 통화량은 팬데믹 기간 대규모 확대 이후 고물가 대응을 위한 긴축 국면에서 둔화됐다가 최근 들어 소폭 반등하는 공통된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한 경로를 따라왔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통화량 증가율이 미국보다 높다고 주장하지만, 한은은 이 역시 통화량의 변동 특성을 무시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양적완화(QE) 기간 중 통화량 증가율이 전년 대비 25~27%까지 확대됐다가, 양적긴축(QT) 국면에서는 -4~-5%까지 급락하는 등 주요국 가운데서도 변동 폭이 가장 컸다.

이처럼 극단적인 변동을 경험한 미국과 단순히 특정 시점의 수치를 비교해 우리나라 통화량이 더 빠르게 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과 미국의 통화량 증가율이 유사한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한은은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시장에서 "한국은행이 지난해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488조원 규모의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한은은 RP 거래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RP 매입은 만기가 2주에 불과한 단기 거래로, 만기가 도래하면 자동으로 반대 거래가 발생해 자금이 회수된다. 이를 단순 누적해 유동성 공급 규모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10만원을 일주일 만기로 대출받았다가 상환하는 일을 1년간 반복해도 지갑에 남는 돈은 520만원이 아니라 10만원"이라는 비유를 들며 설명했다.

따라서 RP매입 규모는 거래액 누적이 아니라 평균 잔액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며, 통화안정증권 발행이나 RP매각 등을 포함한 전체 공개시장운영을 보면 지급준비금을 흡수하는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공개시장운영은 시중 유동성을 능동적으로 늘리거나 줄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경제주체의 금융·재정 활동으로 변동하는 지급준비금 총량을 필요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한 사후 조절 수단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GDP 대비 통화량(M2) 비율에 대해서도 한은은 최근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GDP 대비 M2 비율은 2022년 4분기 이후 소폭 하락한 뒤 횡보하고 있으며, 이는 가계부채 디레버리징과 기업대출 둔화 등 거시건전성 정책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GDP 대비 통화량 비율이 상승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금융산업 발전 과정에서 은행 부문이 커진 데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금융 지원이 확대된 영향이 크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국가 간 GDP 대비 통화량 비율 차이를 유동성 과잉 여부의 근거로 삼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M2는 예금취급기관에 예치된 현금성 자산을 의미하기 때문에, 은행 중심 금융구조를 가진 국가일수록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반면 자본시장 중심 구조인 미국이나 캐나다는 GDP 대비 M2 비율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미국은 금융시장 규모와 중요도가 압도적으로 큼에도 GDP 대비 M2 비율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으로 주요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은은 이러한 구조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는 유동성 상황을 왜곡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금리차와 원·달러 환율 추이 그래프. 최근에는 금리차가 축소됨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상승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한은은 통화량 증가가 환율 상승을 초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통계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해당 주장은 통화량 증가율이 높을수록 물가가 오르고 통화 가치가 하락한다는 구매력평가설(PPP)에 기반하지만, 최근 상황은 이 이론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24년 말 이후 한국과 미국의 통화량 증가율은 유사한 수준이지만,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미국이 한국보다 높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통화량 증가를 환율 상승의 직접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2005년 이후 장기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한·미 통화량 증가율 차이와 원·달러 환율 상승률 간 상관계수는 0.10에 불과해 사실상 의미 있는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낮은 상관관계는 인플레이션 기대가 안정된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한은의 판단이다.

한은은 최근 환율 상승의 배경으로 내외금리차, 성장률 격차 등 전통적인 펀더멘털 요인이 일부 작용했을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최근 움직임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미 정책금리차는 지난해 5월 이후 200bp에서 125bp로 축소됐고, 10년물 국고채 금리차도 크게 줄었다. 성장률 격차 역시 축소되는 흐름을 보였지만 환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한은은 이 같은 괴리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외환시장 수급 여건'과 '시장심리'를 지목했다. 지난해 1~11월 경상수지 흑자가 1018억달러에 달했지만, 거주자의 해외 증권투자는 1294억달러로 이를 크게 웃돌며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올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은은 환율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으로 직접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한국은행은 환율을 직접적인 정책 목표로 삼지 않으며,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간접적으로 고려하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환율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경우 경기와 금융안정에 부작용이 커질 수 있고, 오히려 환율 안정도 저해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앞으로도 정부와 함께 외환시장 안정 노력을 지속하되, 장기적으로는 성장 잠재력 제고와 자본시장 개선 등 경제 펀더멘털 강화를 통해 환율 변동성을 완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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