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유연석 기자]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집단소송제 확대'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행법은 소송에 참여한 사람만 배상받는 구조로 다수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여권을 중심으로 입법 추진이 본격화하자 기업들이 사법 리스크 확대를 우려하며 긴장하는 모양새다.
◆ 김남근 의원 등 '집단소송법안' 발의…제외신고형·책임확인소송·증거개시 등
5일 업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20여명은 지난달 31일 '집단소송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재 주가조작이나 허위공시 등 증권 분야에만 한정된 집단소송제의 적용 범위를 개인정보 유출·소비자 분쟁 등 전 분야로 대폭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의 핵심은 피해자 중 일부가 대표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별도로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모든 피해자에게 판결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100명 이상의 피해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소비자·환경단체 등이 대기업을 상대로 '책임확인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의 고의적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포함했다.
특히 이번 법안에는 '한국형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명시됐다. 이는 소송 당사자 간에 증거와 정보를 상호 교환하도록 의무화하는 절차다.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리던 소비자 소송 환경을 개선해 기업 내부의 핵심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라"…업계, 사법 리스크로 인한 경영 위축 우려
법안이 원안 그대로 통과될지는 미지수지만 재계를 비롯해 유통·식품업계 등은 사법 리스크로 인한 경영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법무부가 집단소송제를 전 분야로 확대하는 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는데,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이 "미국식 소송 만능주의가 도입되면 기업들이 소송 방어 비용으로 경영 능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논리로 강력히 반대한 바 있다.
최근에는 쿠팡 사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워낙 거세 공개적으로 입장이 나오지 않는 분위기지만, 향후 리스크가 될 것이라는 걱정은 업계 전반에 팽배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영세 기업이나 중견 기업이 단 한 번의 집단소송 패소로도 도산할 수 있다"며 "법원 판결이 나기 전 소송 사실만으로도 기업 이미지가 실추돼 회복조차 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소액에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는 범위라면 검토해 여지가 있겠지만, 모든 범위로 확대하는 것은 '빈대를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소액·다수 피해 사건에선 집단소송제 도입 불가피
업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과 소비자·시민 단체는 집단소송제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민사소송법상 '공동소송'은 피해자가 직접 원고로 이름을 올려야만 판결 효력을 인정받기 때문에 개별 피해액이 소액이면 소송 실익이 적어 참여율이 저조하다.
현재 쿠팡 피해자를 대리하는 공동소송 참여자가 전체 피해자(3370만명)의 약 2%(60만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그 방증이다. 사용을 중지하고 심지어 탈퇴까지 하지만 실제로 소송에 참여하지 않는 건 현행 제도가 지닌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의 견해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소송 대리인단 중 한 명인 백주선 대표변호사(법무법인 대율)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규탄 기자회견에서 "현재 집단소송제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국민들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법·제도 개선 없이는 쿠팡과 같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무책임한 기업 행태를 근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현행 제도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다수 피해 사건에서 실효적인 구제가 불가능하다"며 22대 국회의 핵심 과제로 집단소송법 제정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한 전문가는 "현재 집단분쟁조정, 단체소송 등 여러 제도가 있지만, 실제 활용률이나 구제 효과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단순히 개별 피해 보상뿐 아니라 기업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재발 방지를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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