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땐 약을 먹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는 영양제를 먹습니다. 이제는 약국뿐만 아니라 편의점이나 온라인 등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겐 익숙한 약과 영양제들은 각자의 역사와 속사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 코너는 유명한 약·영양제의 개발과정이나 히스토리를 조명합니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방송인 박나래로 시작된 '주사이모' 사건에서 다시 '나비약'이 언급됐다. 최근엔 박나래 전 매니저와 이른바 주사이모로 불린 인물 간의 카카오톡 대화가 공개되면서, 다이어트 약 복용 정황이 드러났다. 이후 먹방 유튜버 '입짧은햇님' 등 다른 유명인 이름이 거론되며 파장은 커졌다. 언론에 공개된 약봉지 사진을 두고 '나비약'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경찰에 고발이 이뤄지며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
'나비약'은 알약 모양이 나비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속칭이다. 수년 전 10~20대 사이에서 '살 빨리 빠지는 약'으로 유행하며 SNS를 통한 불법 유통 문제가 대두됐다. 의료적 관리 없는 오남용 때문에 중독은 물론 정신적 부작용으로 인한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2021년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식 명칭은 디에타민이며, 주성분은 펜터민(phentermine)이다. 펜터민은 비만 치료 보조제로, 미국에서는 1959년에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을 정도로 오래된 약이다. 이 약은 뇌에서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하고 포만감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는 노르에피네프린 등 식욕과 각성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활성을 증가시켜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할 때 체중 감량을 돕는 약물로 개발됐다.
문제는 이 약이 가진 각성 효과와 중독성이다. 펜터민은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약물로, 구조적으로 암페타민 계열과 유사하다. 이 때문에 의존성과 내성, 금단 증상을 유발할 수 있어 국내에서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약효가 떨어지면 더 많은 용량을 찾게 되고, 복용을 중단하면 극도의 피로감과 무기력,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부작용의 범위도 넓다. 비교적 흔한 증상으로는 구갈(입마름), 변비, 두통, 땀이 많이 나는 증상, 복부 불쾌감과 오심, 어지럼증, 배뇨 곤란 등이 있다. 용량이 늘어나거나 오남용될 경우 불안, 불면, 공격적인 성향, 혼돈 상태, 환각과 환청 등 정신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한 경우 경련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배우 양기원은 과거 방송에서 이 약을 복용한 뒤 환청과 환각을 겪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펜터민의 작용 기전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다. 다만 시상하부와 변연계에 위치한 포만 중추를 직접 자극해 식욕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일시적으로 에너지와 각성 효과가 나타나지만, 약효가 사라지면 반대로 뇌 기능이 가라앉아 우울감과 무기력이 찾아오는 특성도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제한적인 경우에만 처방된다. 국내에서는 여러 체중감량 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BMI 30 이상의 비만 환자, 또는 고혈압·당뇨병 등 위험 인자를 동반한 BMI 27 이상의 비만 환자에게 허가돼 있다. 성인 기준 하루 1정 복용이 원칙이며, 불면증을 유발할 수 있어 저녁이나 밤에는 투약하지 않는다. 4주 이내의 단기 처방이 원칙이고, 아무리 길어도 3개월 이상 복용해서는 안 된다. 교감신경을 항진시키는 약물인 만큼 운전이나 위험 작업 시 각별한 주의도 요구된다. 특히 장기 복용 시에는 폐동맥 고혈압이나 심장 판막 이상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펜터민은 반드시 단독으로 투여해야 하는 약물이다. 다른 식욕억제제와 병용하면 효과가 과도하게 증폭돼 부작용 위험이 급격히 커진다. 최근 1년 이내 다른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이력이 있다면 사용을 피해야 한다. 16세 이하 청소년에게는 처방이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비약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 처방량이 이를 뒷받침한다. 펜터민을 비롯한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매년 2억정 이상 처방돼 왔고, 2025년 상반기에도 이미 전년도 환자 수의 70% 이상이 처방을 받았다. 2030 여성층에서는 처방 환자 수는 소폭 줄었지만 1인당 처방량은 줄지 않아, 일단 시작된 의존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 양상도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약이 비교적 쉽게 처방될 수 있다는 점과, 이를 악용한 불법 유통"이라며 "의료적 관리 없는 오남용은 중독과 정신적 부작용 위험을 크게 키운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철저한 관리·감독과 함께 다이어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