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연석청문회 종료, '동문서답·책임회피' 반복…국정조사로(종합)


동문서답·책임회피 일관
셀프조사·꼼수보상도 도마 위
국회, 국정조사 요청서 제출
로저스 대표 등 위증죄 고발 추진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선서를 마친 뒤 최민희 과방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제출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더팩트ㅣ문화영·유연석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틀간 진행된 쿠팡 사태 관련 연석 청문회는 참여한 의원들도 스스로 인정했듯이 '국민들 보기에 답답한 청문회'였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는 언어 소통 장벽을 핑계 삼아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동문서답을 반복해 의원들과 갈등을 벌였다.

쿠팡은 정부가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도 따졌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자료는 공개하지 않아 증언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쿠팡은 청문회 내내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보다 법적 방어를 염두에 둔 듯한 책임 회피 태도로 일관했다.

국회는 결국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10년째 국회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쿠팡의 창업주이자 실질적 소유주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이번엔 직접 등장해 정보유출 사태와 산재 은폐 의혹 등에 대해 책임감 있는 답변을 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로저스 대표 등에 대해서는 청문회 종료 후 위증죄로 고발을 검토하기로 했다.

◆ '셀프조사' 진실공방…증빙 자료는 미제출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방지 관련 연석 청문회가 30~31일 국회에서 열렸다. 청문회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정무·국토교통·기후에너지환경노동·기획재정·외교통일위원회 등 6개 상임위가 참여했다.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쿠팡이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발표한 이른 바 '셀프조사'였다. 쿠팡은 유출범이 고객 계정 3300만건에 접근했으나 3000건만 저장했다가 제3자와 공유하지 않은 채 삭제했다고 알렸다.

수사를 받아야 할 기업이 스스로 사건을 조사·발표한 상황에 대해 정부는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해당 사항은 청문회에서도 큰 지적을 받았다. 그러자 해롤드 로저스 대표는 "국정원의 '지시'를 받았다"며 한국 정부의 은폐 의혹을 십수 차례 반복 제기했다.

하지만 쿠팡은 이를 입증할 자료는 전혀 제출하지 않고 같은 주장만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원이 '지시'했다는 근거 자료 일체를 제출'을 요구했으나 쿠팡은 제출하지 않았다. 포렌식 백데이터도 요구했으나 제공하지 않았다.

이러한 비협조는 또 있었다. '쿠팡 사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팀장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TF가 쿠팡에 160여건의 자료를 요청했으나 50여건만 받은 상태고, 중요한 내용은 없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 영업정지 처분 가능성을 밝혔다. 주병기 위원장은 어떤 정보가 유출됐는지,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지 등을 판단해 필요하다면 영업정지까지 처분할 수 있다면서 소비자와 납품업체의 피해를 총체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동시통역기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 '동문서답' 로저스 또 소통 논란…동시통역기 사용 거부

로저스 대표가 처음 증인으로 참석했던 지난 17일 국회 과방위 청문회에서도 벌어진 통역 논란이 이번 연석 청문회에서도 반복했다. 당시 로저스 대표는 통역으로 시간을 끌거나 질문과는 무관한 답변을 반복해 비판을 받았다.

통역사의 윤색이 문제라는 지적에 이번 청문회는 통역사를 거치지 않도록 동시통역기를 준비했다. 하지만 로저스 대표가 동시통역기 사용을 거부하고 개인 통역사 사용을 요구했다. 그는 "이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며 "이의제기를 하고 싶다"고 언성을 높이는 등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다. 결국 한쪽 귀엔 동시통역기를 착용한 채 열페 통역사를 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로저스 대표의 답변은 이틀 내내 방어적이었다. 같은 말은 반복해 '로봇'이냐는 지적이 나왔고, 의원들이 멈추라고 해도 하고 싶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김범석 의장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동문서답 답변을 해 '바지사장'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심지어 의원이 말을 끊자 로저스 대표는 "그만합시다(Enough)"라고 말하며 불쾌감도 드러냈다. 해당 행동을 두고 청문회에서는 '사과는 커녕 오히려 흥분하거나 책상을 내리치며 화를 내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범석 의장 관련한 답변에선 철저하게 엉뚱한 답변을 했다. 황정아 의원이 "김 의장이 이 청문회를 시청하는지, 시청 후 무슨 말을 했는지"를 물었는데, 로저스 대표는 "그와 나는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라는 답변을 했다.

또 로저스 대표는 김 의장의 산재 은폐 지시 의혹에 대해서는 그 출처가 되는 메시지의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작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김 의장에겐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진실이라 생각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런 로저스 대표를 향해 "왜 묻지 않으냐, 김범석은 신이냐"고 꼬집었다.

◆ 꼼수보상도 도마 위…로저스 "부제소 합의 없다"

쿠팡이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긴급 발표한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3370만개 계정 고객을 대상으로 5만원 보상 쿠폰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쿠팡'과 '쿠팡이츠'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각각 5000원에 불과하며 '쿠팡 트래블'에 2만원, 명품 사이트 '알럭스'에 2만원이 측정됐다.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지 않는 곳에 모두 4만원의 보상을 책정한 데 대해 꼼수 보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알럭스에서는 양말 한켤레에 3만원'이라며 "양말 한 켤레도 못 사는 게 보상이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로저스 대표는 "전례가 없는 규모의 보상"이라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부제소 합의 조항을 조심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쿠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중인 법무법인 일로는 "보상 쿠폰을 사용했다가 본인도 모르는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부제소 합의'는 당사자간 특정 분쟁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의미한다.

로저스 대표는 보상 쿠폰에 '부제소 조건'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정보 유출 고객들에게 지급한 5만원 쿠폰과 관련해 '보상에 민형사 소송을 하지 않는다는 약관을 포함할 것이냐'라는 황정아 의원 질문에 "구매 이용권에 조건이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보상안을 근거로 추후 손해배상 소송이 벌어질 경우 배상액 감액을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엔 "소송을 한다면 이것은 감경 요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지난 11월 새벽배송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고 오승룡 씨의 누나 오혜리 씨에게 사과를 표하고 있다. /뉴시스

◆ 로저스, 사망 노동자 유가족에 사과…보상은 선 그어

청문회엔 지난 2020년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하다 사망한 고 장덕준 씨와 지난 11월 제주에서 새벽배송을 하다 숨진 택배기사 오승용 씨의 유가족이 방청인으로 각각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고 장덕준 씨와 관련해서는 김범석 의장이 산재 은폐 지시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현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에 사건이 배당됐다. 장 씨의 어머니 박미숙 씨는 "덕준이에게 저지른 산재 면피 지시에 대한 사과도, 지금까지 쿠팡을 위해 뛰어다니다 쓰러져간 수많은 노동자에 대한 사과 한마디도 없음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청문회에서 진실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로저스 대표는 박미숙 씨에게 "우리는 공개적으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책임을 인정한다"며 "고인의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드님의 사망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오 씨의 누나 오혜리 씨는 "쿠팡 측은 지금까지도 저희에게 연락조차 없고 묵인하고 있다. 사과가 그렇게 힘드냐"며 쿠팡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산재를 인정하고 보상을 요청했다. 하지만 로저스 대표는 "정말로 죄송하다.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고 고갤 숙이면서도, 산재 인정과 보상 요구에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즉답하지 않았다.

이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산업재해에 해당함이 상당하다 보인다"고 말했다.

◆ 국회, 국정조사요구서 제출…"책임자 김범석 나와라"

연석 청문회는 마쳤지만 쿠팡 사태는 국정조사로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쿠팡에 대해 노동자 사망, 불공정 거래, 물류센터 실태조사 등 문제를 다뤄야 한다며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과방위 여당 간사인 김현 의원과 외통위 간사 김영배 의원, 김현정 원내대변인 등은 이날 "국회 의안과에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현 의원은 "김범석 의장이 국내에 들어와 책임 있는 답변과 피해 보상에 대한 설명을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행명령장 발부·입국 금지 조치 등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국정조사는 여야가 합의해 추진돼야 될 사안이기 때문에 (향후) 국정조사 계획서·증인이 채택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의장이 요지부동이라고 할 경우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번 청문회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반복되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입점업체 수수료 갑질, 소비자 개인정보 유출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는 이번 청문회에서 제기된 모든 사안을 철저히 조사하고 천문학적인 과징금, 형사처벌 등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평했다. 이어 "아울러 빠른 시일 내에 국정조사를 여는 한편, 김범석 의장에게 강제구인장을 발부해서라도 국민 앞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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