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리더십] 2인자 사라진 재계…'오너 체제'로 신사업 드라이브


전문경영인 부회장층 얇아져…젊은 오너들 역할 확대

주요 기업들은 올해부터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이 축소된 상황에서 사업 활동을 벌이게 된다. 사진은 삼성 서초사옥.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그룹 2인자인 부회장단이 지난해 정기 인사를 통해 축소되면서 올해 기업들은 강력한 '오너 체제'를 정착시키며 미래 신사업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 2인자 없는 새로운 조직 문화 구축할 듯

1일 재계에 따르면 새해를 맞아 재정비된 기업 내부 분위기는 지난해와 사뭇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연말 단행된 정기 인사를 통해 리더십 구조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그룹 곳곳에 영향력을 미쳤던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이 크게 축소됐다. 이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사이, 젊은 기업인들이 전진 배치되며 세대교체가 이뤄진 상태다.

앞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인사는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의 용퇴다. 그는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출범한 비상 조직인 사업지원TF를 오랜 기간 이끌며 경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그는 그룹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맡아 '삼성 2인자'로 불리기도 했다. 정 부회장의 용퇴는 실적이 개선되는 등 회사가 안정기에 들어감에 따라 후진 양성을 위해 내려진 결정으로 해석된다.

정 부회장 용퇴와 함께 사업지원TF는 상설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개편됐다. 지원실은 올해부터 박학규 사장이 이끌게 된다. 사업지원실의 업무는 계열사 협력 조율, 지원 등 기존과 동일하다. 주력 사업과 부서를 두루 경험해 전체 사업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보유한 박 사장을 통해 주요 사업 간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2인자가 물러난 기업은 삼성뿐만이 아니다. 롯데그룹도 2인자 자리로 꼽히는 롯데지주 대표이사 자리에 변화를 줬다. 이동우 부회장이 용퇴하고, 고정욱 사장과 노준형 사장을 새롭게 선임했다. 재무·경영 관리, 전략·기획 등 각각 역할에 맡게 조직을 운영하며 전문성과 실행력을 강화하겠다는 조처다.

특히 롯데그룹은 계열사 부회장단에도 손을 댔다. 이영구 롯데 식품군 총괄대표 부회장,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이 회사를 떠났다. 지주사·핵심 계열사 부회장이 모두 용퇴하면서 사실상 그룹 부회장단이 해체된 셈이다. 올해부터 롯데그룹에선 젊은 리더십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직 문화가 구축될 전망이다.

다른 기업에서도 부회장단은 축소되는 추세다. LG그룹의 경우 신학철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유일하게 권봉석 ㈜LG 최고운영책임자(COO)만 부회장직을 유지했다. SK그룹은 지난해 연말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으나, 전반적으로 부회장단을 중심으로 한 집단 경영 체제를 허물고 있는 중이다.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이 축소됐지만, 오너가들의 약진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승진한 허용수 GS에너지 부회장(왼쪽)과 허세홍 GS칼텍스 부회장. /GS

◆ 총수 리더십 강화…젊은 오너들도 약진

재계는 전문경영인 출신 2인자들이 물러나면서 총수 리더십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 결정권이 있던 부회장단이 사라진 만큼, 그 권한과 책임이 그룹 총수에게 쏠리게 되는 것이다. 삼성의 경우 10여년 만에 사법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상황에서 새해를 맞게 됐다. 추후 이재용 회장을 중심으로 한 '뉴삼성' 밑그림이 더욱 짙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총수뿐만 아니라 다른 오너가의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다. SK그룹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지난 2024년부터 전문경영인을 대신해 2인자 자리를 맡고 있다. 최 의장은 수년에 걸쳐 조직 슬림화를 시도, 경영 효율화 및 관리 체계 내실화 등의 작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GS그룹에서는 지난해 말 부회장으로 승진한 인물 모두 오너가였다. 승진 대상인 허용수 GS에너지 부회장은 고(故) 허만정 창업주의 5남 고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의 아들이고, 허세홍 GS칼텍스 부회장은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오너 3·4세의 존재감이 한층 강화됐다.

롯데그룹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부사장이 올해부터 박제임스 대표와 함께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이사를 맡는다. 그간 신 부사장은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맡아 왔는데, 대표이사로 올라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 부사장은 올해 롯데지주에 신설하는 전략컨트롤 조직에서도 중책을 맡을 예정이다. 전략컨트롤 조직은 그룹 전반의 비즈니스 혁신과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주도한다.

LS그룹 역시 오너가를 주축으로 세대교체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의 장남 구동휘 LS MnM 대표이사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역할이 확대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 미래기획실장은 올해부터 미래기획그룹장으로 일하게 된다.

앞서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젊은 오너들의 약진으로 1960년대생 전문경영인 부회장층은 상대적으로 얇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젊은 오너 대부분은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룹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만큼, 이전보다 더 공을 들여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이 중심이 되면, 분권형 구조가 구축된다"며 "신속하고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고, 각종 불확실성에 대응해야 하는 신사업 영역에선 일원화된 오너 리더십이 더 적합해 보인다"고 밝혔다.

rocky@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