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산 기자] 손해보험사가 손해율 관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음해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료 인상이 예고된 가운데 소비자 부담 확대가 불가피할 조짐이다. 그간 보험업계는 금융당국과 협조를 통해 보험금 누수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을 발휘하기까진 관망세가 요구된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보험개발원은 대형 손해보험사로부터 자동차보험 요율의 적정성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접수받았다. 요율 적정성 검토는 보험료 조정을 앞두고 거치는 공식 절차다. 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금융당국과 요율을 협의한 뒤 보험료 최종 조정 여부와 인상폭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손보업계가 자동차보험 손해율 관리에 골머리를 앓는 만큼 보험료 인상 논의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지난 11월 기준 주요 손해보험사 5곳의 자동차보험 연간 누적 평균 손해율은 86.0%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삼성화재(86.6%) △현대해상(86.5%) △KB손보(86.4%) △DB손보(85.4%) △메리츠화재(85.3%) 순이다.
손해율이란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의 비중이다. 통상 손보사는 판매 및 관리비와 사업 운영비 등을 고려했을 때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80%를 넘기면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간 손보업계는 자동차보험료가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는 만큼 인상 시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부담을 인식했다. 그러나 손실 규모가 커지면서 버티기에는 한계라는 입장이다.
정비수가 인상 역시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정비수가 인상은 사고 차량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난다는 의미로 보험사의 손해율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 비용 상승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 보험료 인상 논의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보험료 2% 이상 조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으나, 실제 적용되는 인상률은 1%대 초중반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나온다.
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험료 누수 예방 조치에 한계가 선명하다는 점이다. 현재 손보업계는 금융감독원, 경찰청 등 유관기관과 공조를 통해 자동차보험 사기 척결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보험사기를 공모한 일단 848명을 검거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고령화 등 보험료 인상 외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는 문제도 적지 않다. 손보업계는 장마가 몰리는 여름철 자동차 침수예방 활동 등을 펼치고 있으며 별도의 침수차 보상가이드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매년 손해율 상승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사고 위험이 높은 고령운전자 급증이 불가피한 만큼 관련 대책 마련도 요구되는 실정이다.
한 손보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 인상이 물가 상승에 영향을 주는 지표인 만큼 인상에 부담이 있었지만, 이제는 수익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라며 "그간 상생금융 차원에서 보험료 인하가 관례로 자리 잡았지만, 올해는 분위기를 바꿀 시기다"라고 말했다.
자동차보험과 함께 실손보험료도 인상된다. 이달 생명·손해보험협회는 실손의료보험의 전체 인상률 평균이 약 7.8%로 산출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보험사 평균치를 기준으로 산출된 수치로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의 갱신 주기와 세대 구분, 가입자의 연령·성별, 보험사별 손해율 수준 등에 따라 실제 인상 폭은 계약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실손보험이 모럴헤저드 관리가 가장 어려운 영역이라고 지적한다. 손해율이 높은 상품이나 가입자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인상률을 적용해 보험료 부담을 늘리고 있지만, 2~3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구조적으로 인상분을 웃도는 보험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이에 보험료와 보장 범위를 모두 낮춘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을 유도했지만, 지난 9월말 기준 손해율 147.9%를 기록하면서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손해율을 나타냈다.
이에 다음해 상반기 보험금 누수의 요인으로 지목되어 온 도수치료 등을 보장에서 제외한 5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해 계획이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기존 1~2세대 가입자가 5세대 보험으로 갈아타면 보험료를 낮출 수 있지만 보장범위와 수준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업계는 기존 보험은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담보를 제외하는 실손보험 선택형 제도 도입에 주목하고 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상품의 경우 가입자가 더 보수적이고 신중하게 증권을 운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라며 "보험료 인하가 보장축소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개선되야 한다. 4세대 보험 상품이 '설계 실패'로 오해될 우려까지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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