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행동주의…주총 권력, 이사회에서 주주로 이동하나


국내 행동주의 펀드 캠페인 4년새 6.6배 증가
정기주총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 전면 부상

국내 증시에서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주주제안도 거세지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최근 BNK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선임을 두고 공세에 나섰다. /BNK금융그룹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국내 증시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개인투자자 급증과 온라인 주주 플랫폼 확산으로 소액주주 결집이 쉬워진 데다, 올해 연이어 이뤄진 상법 개정도 행동주의 확산에 제도적 힘을 실었다. 다만,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하에 기업 의사결정의 중심축이 이사회에서 주주총회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 상법 개정·스튜어드십 코드…행동주의에 힘 실린 배경은

24일 글로벌 리서치 업체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Diligent Market Intelligence)에 따르면 국내 행동주의 펀드 캠페인 대상 기업 수는 2020년 10개에서 2024년 66개로 6.6배 증가했다. 일본은 오히려 2022년 109개에서 2024년 96개로 감소한 것과 대비되는 추세다.

주주행동주의 증가의 대표적 원인으로는 개인투자자 증가가 꼽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9년 약 600만명이던 개인투자자들은 2024년말 1410만명으로 2.4배 급증했다. 여기에 개인 주주들이 IT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결집하며 주주 활동을 촉진했다. 양대 소액주주 IT 플랫폼 가입자는 올해 7월 기준 16만5000명이다.

주주행동주의가 늘면서 주주제안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총 42개 상장회사에 164건 주주제안이 상정됐다. 전년 대비 20% 증가한 수치다. 특히 올해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들이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수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법 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3%룰 등이 포함됐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연금공단 업무보고 과정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강화를 독려하고 나선 점도 이 같은 평가에 힘을 싣는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가 기업 의사결정에 참여해 주주가치를 높이고 수탁자 책임 원칙을 강화하는 제도다.

국내 증시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면서 기업 의사결정의 중심축이 이사회에서 주주총회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8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를 통해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배정한 기자

◆ 주주서한에 공개매수까지…행동주의, 전면전 양상

내년 정기주총 시즌을 염두에 둔 행동주의 펀드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LG화학의 지분을 1% 이상 보유한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탈은 내년 3월 정기주총을 앞두고 주주결집을 예고했다. 팰리서캐피탈은 지난 10월 회사가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활용한 자사주 매입 실시 등 네 가지 주주가치 제고 계획안을 제시한 바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 15일 코웨이 이사회에 밸류에이션 및 자기자본이익률(ROE)의 중장기 목표와 계획을 기업가치 제고계획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주주서한에서 "코웨이는 2013~2018년 평균 30%의 높은 ROE를 바탕으로 상당 기간 PER(주가수익비율) 20배 이상에서 거래됐으나 현재 ROE는 올해 3분기 기준 17.7%로 과거 대비 크게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6일과 17일에는 정보기술 인프라 기업 가비아와 보험법인대리점 에이플러스에셋에 대한 공개매수를 마무리했다. 이로써 얼라인파트너스의 각 기업에 대한 지분율은 기존 9.03%, 4.99%에서 12.32%, 12.14%로 높아졌다.

BNK금융지주 지분 약 3%를 보유 중인 라이프자산운용은 BNK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선임을 두고 공세에 나섰다. 지난 4일 발송한 공개 주주서한을 통해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며 회장 선임 절차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BNK금융지주가 현재 진행 중인 회장 선임 절차가 절차적인 정당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기업가치 제고 vs 이사회 권한 위축

주주행동주의 활성화를 두고 시선은 엇갈린다. 주주가 단순히 주식을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주로서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만큼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이사회 기능과 역할을 위축시킨다는 의견이 맞선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향후 국내 토종 기관투자자, 소액주주연대, 연기금, 외국계 행동주의펀드 등의 주주행동주의는 국내 기업의 밸류업으로 연결될 전망"이라며 "일본도 주주행동주의가 활성화되면서 중복상장 기업을 폐지하는 등 자발적인 밸류업을 실현한 만큼 향후 일본과 같이 국내 증시도 행동주의에 따른 초과수익률 기회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주주행동주의 동향과 대응과제' 보고서에서 "현재 발의된 자사주 의무 소각 및 권고적 주주제안 법안까지 통과된다면 자기주식을 활용한 경영권 방어가 불가능해지고 이사회 재량으로 결정할 안건도 권고적 주주제안 명목으로 주총에서 다뤄야 하기에 경영 중심축이 이사회에서 주총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주총회가 주식회사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사회적 이슈를 둘러싸고 주주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소로 변질될 수 있다"고도 꼬집었다.

zz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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