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문은혜 기자] 2025년 국내 조선업계는 슈퍼 사이클의 정점에 오르며 역대급 실적과 구조적 과제가 동시에 부각된 한 해였다.
한·미 협력의 상징인 '마스가(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MASGA) 프로젝트'가 업계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고,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는 역대급 호황을 타고 올해 수주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며 조선 강국의 위상을 재확인시켰다.
다만 이같은 호황 속에서도 숙련공 부족, 인력 노령화 등에 따른 인력난이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잡으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한·미 조선 동맹의 핵심,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올해 조선업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마스가 프로젝트'다. 1500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예정된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미국의 조선업 재건을 한국의 기술력으로 뒷받침하는 전략적 협력 모델이자 한·미 동맹을 경제와 안보 차원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 상징적인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현지 조선소 투자, 노후 설비 현대화, 조선 인력 양성 프로그램, 군·민 겸용 유지보수(MRO) 협력 등이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약 1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한국 기업 최초로 미 현지 조선소 운영권을 확보한 한화오션은 지난 8월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마스가 프로젝트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HD현대중공업은 HD현대미포를 흡수합병해 이달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새출발하며 체질개선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중소형 상선 및 중형급 함정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수요에 맞춤형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중공업도 마스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국의 제너럴다이내믹스 나스코와 함께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사업에 나섰다. 또한 미국 콘래드 조선소와는 액화천연가스(LNG) 벙커링선을 미국에서 공동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마스가 프로젝트가 본격화될 경우 미국은 해상 안보 강화, 조선 산업 부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한국은 안정적인 장기 수주와 글로벌 영향력 확대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연방의회를 통과한 내년도 국방수권법(NDAA) 최종 법안에 조선 부문 대미 투자와 관련, 한국 기업에 우선권을 주는 내용 등이 삭제되면서 마스가 프로젝트의 탄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한 프로젝트를 위한 실무 협의 과정에서도 여러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미국의 법적 규제를 비롯해 국내 조선 3사의 전략이나 입장 등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어 프로젝트가 본격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한·미를 견제하고 있는 중국이 해양 패권을 지키기 위해 자국 조선소와 해운업계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중장기적으로 국내 조선업계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마스가 프로젝트가 기회인 동시에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양날의 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글로벌 발주 줄어드는데…韓 조선산업은 '好好'
2025년은 국내 조선업계의 슈퍼 사이클이 수치로 증명된 해다. 글로벌 발주 감소 국면 속에서도 국내 조선 빅3인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은 고부가 선종 위주의 수주를 이어가며 일감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그 결과 올해 수주 목표 달성을 눈 앞에 둔 상황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총 119척·167억6000만달러를 수주해 연간 목표치인 180억5000만달러의 92.9%를 채웠다. 연말까지 추가 수주가 이어지면 목표 초과 달성 가능성도 있다.
한화오션은 올해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19척을 포함해 컨테이너선과 LNG 운반선 등 총 43척·79억6000만달러를 수주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수주액인 88억6000만달러의 약 90% 수준이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목표 수주액 98억달러 가운데 현재까지 69억4000만달러를 수주해 달성률 70.4%를 기록 중이다. 다만 상선 부문에서는 이미 전년 실적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연말 수주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늘어난 수주를 바탕으로 조선 3사의 합산 실적도 지난해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분기까지 3사의 누적 매출 합계는 29조7592억원, 영업이익은 2조9679억원, 당기순이익은 2조71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 매출은 18.3%, 영업이익은 315%, 당기순이익은 769.9% 증가한 수치다.
업계에서는 국내 조선업 호황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최근 발표한 'KERI 경제동향과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반도체와 조선을 중심으로 수출이 확대돼 전년 대비 수출이 0.8%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삼정KPMG는 국내 조선업이 수주잔량을 기반으로 내년에도 완만한 회복 흐름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LNG·LPG 등 친환경 고부가 선박의 꾸준한 수요와 차세대 연료 선박 투자, 생산 포트폴리오 전환, 북미·유럽·동남아 방산 수요 확대가 중장기적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봤다.
◆조선업계 '인력난' 고착화…'스마트 전환'으로 돌파?
다만 유례없는 호황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인력 부족 문제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은 연평균 1만2000명 이상 인력이 요구되고 있지만 업계 전반이 절대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고난도 작업을 수행하는 숙련공 부족이 품질 관리 문제가 심각하게 떠오르는 상황이다. 인력난은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닌 산업 전반의 구조적 리스크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조선업계는 고질적인 인력난과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 AI를 활용해 설계를 자동화하거나 용접 등 작업에 로봇을 도입하는 등 '스마트 조선소'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HD현대는 오는 2030년까지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 구축을 목표로 '미래형 조선소(FOS·Future of Shipyard)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AI·로봇 기반으로 생산성과 공기를 30% 단축한다는 전략이다.
한화오션도 오는 2030년까지 약 3000억원을 투입해 용접·가공 로봇을 도입, 자동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이며, 삼성중공업은 현재 블록 용접·도장, LNG 운반선 화물창 용접, 배관 검사 등 90여종의 자동화 장비와 로봇을 개발·운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