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이 분기점"…AI가 신약개발 판 바꾼다


글로벌 제약사, R&D 구조 전면 재편
국내도 투자 145%↑·바이오파운드리 논의 본격화

바이오 업계에 인공지능(AI)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기반 신약개발·바이오파운드리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사진은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한국바이오협회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국내외 바이오 업계가 인공지능(AI)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AI 도입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데이터 기반 신약 개발과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필요성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가 비용 절감 기술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4일 한국바이오협회가 개최한 '한국 바이오경제 전망' 세미나에서 산업계·학계·정부는 한목소리로 "2026년이 한국 바이오의 전환점"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기업의 CEO들은 AI 도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박상훈 삼정KPMG 파트너는 "전 세계 매출 5억달러 이상의 기업 CEO 13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결과 응답자의 67%가 'AI가 1~3년 안에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답했다"며 "기업들의 투자금이 AI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까지 평균 10~15년, 비용은 2~3조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AI 기반 플랫폼이 확산하면서 개발 기간은 6~9년, 비용은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AI 신약개발 시장은 2023년 약 2조1900억원에서 2030년 약 13조44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박 파트너는 "AI는 연구개발(R&D) 효율성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경쟁 룰 자체를 재정의하는 기술"이라며 "글로벌 표준은 이미 AI 기반 개발 체계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AI 기반 생태계 구축은 국가 차원의 산업 전략으로 번지고 있다. 중국은 우시바이오로직스(생산)–바이오맵(AI 신약 설계)으로 이어지는 '수직 통합 모델'을 구축해 파이프라인 확장 속도를 높이고 있다. 글로벌 임상시험 건수 또한 중국이 세계 1위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미국은 빅테크가 플랫폼 주도권을 쥔다. 엔비디아는 '바이오니모'를 통해 100여개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했고,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폴드 이후 AI 기반 공동 연구 모델을 확장하며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다.

국내 기업 역시 자체 AI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과 데이터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바이오 협회 분석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산업의 시설투자는 2024년 기준 무려 145% 증가했다. 특히 AI 실험 자동화를 위한 설비 투자와 공정 디지털화가 두드러졌다.

전문가들은 AI 활용을 위해서는 충분한 데이터와 확보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성봉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대장균 유전자 조합만 해도 경우의 수가 10의 36승에 달한다"며 "AI를 제대로 쓰려면 표준화·자동화 기반의 '바이오파운드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오 분야에서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데이터의 양과 질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국내 바이오 빅데이터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미있는 데이터를 표준화해 생산하는 체계, 이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환경, 바이오 분야에 특화된 AI 개발, 대량의 후보 물질을 빠르게 만들고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AI 중심의 바이오 연구 전략을 전면 재편 중이다. 윤희정 한국과학기획기술평가원 팀장은 "정부가 'AI 바이오 의료 연구 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며 "고품질 데이터 인프라와 AI·바이오 융합 인력 확보가 한국형 AI 신약개발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2026년은 특히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힌다. 산업계는 △생물보안법 통과 가능성 △미·중 기술패권에 따른 수출 영향 △AI 기반 제조 규제 정비 △특허 만료 블록버스터 대응 등을 내년·후년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특히 현재 제약산업은 2030년까지 약 2000억달러 규모의 블록버스터 약물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다. 신약 개발이 성공할 확률은 10% 안팎으로, R&D 비용은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다. 윤 팀장은 "AI는 개발 기간을 줄이고 비용을 낮추며 실패를 더 빨리 확인하게 해준다"며 "제약기업이 겪는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투자 위축과 관세·규제 등의 복합 위기 속에서도 AI 도입이 비용·시간·정확성을 크게 개선하는 돌파구가 되고 있다"며 "한국도 늦었지만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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