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신한투자증권이 초고액자산가를 정조준한 자산관리(WM) 전략에 고삐를 죄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WM 중심의 성장 전략을 강조하면서 계열사와의 협업도 강화하는 추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고위험·대체투자 점검 강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특정 고객군에 대한 과도한 집중이 중장기적 수익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한투자증권이 기업금융(IB)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WM 편중할 경우 실적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 그룹 차원 '수퍼리치 드라이브'…외형 확대 속도전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들어 초고액자산가 중심의 프라이빗뱅킹 체계를 대폭 정비하며 WM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2월에는 자산가를 위한 전문가 그룹인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를 업계 최대 규모인 100명으로 확대했다. 작년 7월 출범한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는 신한은행과 신한투자증권의 투자전략, 상품, 세무, 부동산, 상속·증여, 자산배분, IB 등 각 분야별 최고 베테랑들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이다.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는 프라이빗클라이언트(PB) 조직을 고도화하고, 그룹 내 고액자산가 풀(pool)을 통합 관리하는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신한은행의 PWM 조직과의 협업, 신한라이프·신한자산운용 등과의 상품 공동 개발을 기반으로 '그룹 WM 벨트'를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수퍼리치 시장이 경쟁 격전지로 부상하면서 신한투자증권도 점유율 확보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초고액자산가는 대체투자·절세설계·전문 운용상품 등 고부가가치 WM 상품을 선호하는 특성이 있어 단기간 수익 확대가 가능하다는 점도 신한투자증권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으로 꼽힌다. 그룹 차원의 자산가 네트워크를 묶어내면 영업 효율도 빠르게 개선될 수 있다.
다만 신한투자증권의 외형 확대 전략이 속도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불안정성을 내포한다는 지적도 인다. 수퍼리치 기반 영업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할 뿐 아니라 내부통제와 상품 설계 역량이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고객 요구가 빠르게 바뀔수록, 이를 따라잡기 위한 조직 재편·상품 개편·성과 체계 조정 등이 지속적으로 필요해지면서 비용 부담 또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진다.
◆ 규제 리스크·고위험 상품 부담…고객군 편중 가능성도
금융당국의 규제 흐름이 신한투자증권의 WM 집중 전략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금감원은 고위험 대체투자·사모상품에 대한 점검 강도를 꾸준히 높이고 있으며, 판매사 책임을 강화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고액자산가는 전통적으로 대체상품·전문투자형 상품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규제 변화 시 PB 조직이 감당해야 하는 상품 심사·적합성 검증·사후 관리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규제 리스크는 곧 WM 사업 비용 증가와 상품 공급 위축으로 이어져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특정 고객군에 편중된 영업 구조는 자산가들의 투자 성향 변화에 따라 회사 실적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한계도 내포한다. 초고액자산가층은 평시에는 안정적 자산 비중이 높아 자금 이동이 크지 않은 편이지만, 세제·금리·규제 등 핵심 정책 변화에는 일반 고객보다 더 빠르고 대규모로 포지션을 조정하는 특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시기에 자금 유출입이 집중되면 WM 실적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최근 금융권 전반에서 내부통제 강화가 핵심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고액자산가 대상 맞춤형 상품·비표준형 구조화 상품 비중이 높아질수록 내부통제 체계가 받는 압력도 커진다. 이 과정에서 단순 판매 실적 위주의 영업 전략이 반복될 경우 고객군 편중 전략이 조직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이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 결국 수익 중심 전략이 단기 실적을 끌어올릴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위험관리 및 규제 대응 부담이 구조적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IB 부진 속 WM 의존 높아져…포트폴리오 불균형 심화 우려
신한투자증권의 WM 편중 전략이 우려를 자아내는 데는 IB 부문의 회복이 경쟁사 대비 더딘 상황도 일조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의 2025년 3분기 IB 수수료 수익은 418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약 479억원) 대비 12% 이상 감소한 수치다.
또한 대형 IPO·인수금융·블록딜 등 주요 IB 전통 부문에서 신한투자증권의 존재감은 최근 수년간 제한적이었다. 리그테이블 순위 변동성도 높고, 딜 파이프라인 부족과 주요 인력 이탈 이슈도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WM으로 실적 의존도가 심화할 경우, 회사 전체의 포트폴리오가 더 불균형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문제는 IB 부진이 단기적인 일시 현상이라기보다 구조적인 한계로 자리 잡는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신한금융 내부에서 IB 사업이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룹 의사결정 구조상 과감한 투자·인력 확충·리스크 테이킹이 어려운 구조가 이어지면서, 경쟁사들이 시장 회복 흐름을 타고 빠르게 딜을 쌓는 동안 신한투자증권은 주도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IB–WM 균형이 무너진 구조가 장기 경쟁력을 방해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신한투자증권이 WM 편중 전략을 유지할 경우 단기 실적은 방어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사업 포트폴리오 전체의 안정성과 경쟁력에 의문 부호가 붙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신한투자증권 측에서는 초고액자산가를 타깃으로 하는 전략은 증권가 대세라는 입장이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전 증권사가 VVIP에 몰두하고 있다. WM에 국한하지 않고 IB 등 각 분야에서 모두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신한투자증권은 발행어음 인가 사업자 선정을 기다리고 있다.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자기자본 4조원을 충족해야 한다. 자금 조달과 운용상 자금의 만기 불일치 등 건전성 관리를 위한 유동성비율 규제 또한 준수해야 한다. 대주주 제재 이력이나 당국 징계 등도 심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해 1300억원대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관련해 기관경고를 받은 바 있으나, 기관경고는 발행어음 인가 등 신규 사업 참여에는 제약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