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나는데, 어쩔 수 없다…'울며 겨자먹기'로 쿠팡 사용하는 소비자들


산간벽촌 주민·워킹맘 등 불만 커도 ‘대체재’ 없는 현실
시민단체, '소비자 보호 3법' 도입으로 책임 강제해야

국내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 쿠팡에서 3370만 건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된 가운데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박헌우 기자

[더팩트ㅣ유연석 기자] #1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는 50대 김모씨. 그는 지난 2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에 동참했다. 하지만 쿠팡을 탈퇴한 건 아니다. 여전히 사용 중이다. 해지 버튼을 누르려다 비번과 결제 정보 등만 변경했다.

새벽배송 노동자 과로사 문제 등 때문에 쿠팡에 대해 이전부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살다 몇 년 전 산간벽촌으로 거주지를 옮긴 그는 시골 생활에선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고 전했다. 주변에 물건을 구할 마트가 없고, 구하려면 차로 한참을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서울 연남동에 거주하는 40대 송모씨. 8세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개인정보 유출로 2차 피해를 입을까 불안하지만, 당장 탈퇴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직장 때문에 장을 볼 시간도 부족한데, 클릭만 하면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해 있는 이 시스템이 너무 편리하다는 것이다.

특히 무료 반품이 가능해 고민 없이 주문 버튼을 누른다고 했다. 그는 또래 엄마들 사이에선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행사 때문에 한복이나 코스프레 옷을 입혀야 하는 경우, 쿠팡에서 주문해 한 번 입히고 반품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대체할 플랫폼이 생기지 않는 한 계속 쿠팡을 쓸 것 같다고 말했다.

3370만명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낸 쿠팡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쿠팡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섬이나 산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지리적 특성상 기존의 택배 배송비는 도심보다 3000~5000원 정도 추가됐다. 물건을 받기까지도 1주일 이상 걸리기도 했다. '당일 배송'과 같은 표현은 꿈조차 꾸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쿠팡이 이들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쿠팡은 로켓와우 회원이면 무료 배송이 가능했다. 당일 배송까지는 아니어도 기존보다 짧은 2~3일 안에 물건을 받기도 했다.

워킹맘들도 쿠팡을 끊지 못하는 대표적 집단이다. 유출사고가 알려진 이후 맘카페에서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비밀번호 변경, 카드 해지, 탈퇴, 손해배상 참여 방법 등의 정보가 공유된다. 하지만 그러한 글 밑에 댓글에는 "어쩔 수 없이 쓴다", "야근에 허덕이는 나에게 일상을 선물해줬는데"라며,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글들이 눈에 띈다. "이미 내 정보는 다 털려 있다"는 자조적인 하소연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불만이 있어도 쓸 수밖에 없다는 현상은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에게 쿠팡이 필수재로 자리잡았다. 마땅한 대체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이 쿠팡 생태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글로벌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쿠팡의 '고객 이탈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그 근거로 △쿠팡의 대체 불가능한 시장 지위 △한국 소비자들의 낮은 데이터 유출 민감도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투자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손상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독점적 지위를 지닌 플랫폼을 견제하고 책임을 온전히 묻기 위해서 '소비자 보호 3법'(집단소송법, 징벌적 손해배상제, 증거개시제도)을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정부와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해외에서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기업 책임을 강제하면서 신속한 보상과 재발 방지를 이끌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집단소송 부재, 약한 징벌 배상, 피해자 입증책임, 분쟁 조정의 비강제성이 겹치면서 그 책임이 사실상 공백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포괄적 집단소송제 도입, 실효성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증거개시제도 도입은 '쿠팡방지 3법'이라 불러야 할 만큼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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