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리더십 필요한 때" 물러나는 '재계 2인자들'


거센 세대교체 바람…그룹 2인자도 못 피해
그룹 부회장단 축소 흐름…"오너 리더십 강화"

2026년도 정기 인사를 통해 그룹 2인자로 불렸던 기업인과 부회장직을 달고 있었던 대표이사급 기업인 다수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진은 삼성 서초사옥.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소위 '재계 2인자'로 불린 기업인들이 2026년도 정기 인사를 통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기업들은 위기 극복·미래 준비를 위해 두각을 나타낸 젊은 인재들을 과감히 전진 배치하는 세대교체를 단행했는데, 그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서 '재계 2인자'들의 잇단 퇴진이 이뤄진 모습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인사에서 다수 기업이 '2인자' 교체를 결정했다. 대표적으로 삼성이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비상 조직으로 신설한 사업지원TF를 정식 사업지원실로 개편하면서 해당 조직을 이끌던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 자리에 박학규 사장을 위촉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복심으로 불렸던 정 부회장은 새로운 삼성을 위해 후배 경영진에게 길을 터주겠다고 결심, 회사에 스스로 '물러나겠다'라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도 이번 인사에서 그룹 2인자 자리로 꼽히는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직에 변화를 줬다. 지난 2020년부터 지주 대표이사를 맡아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개선과 미래 역량 강화에 매진했던 이동우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롯데지주는 이 부회장 용퇴 이후 실무형 조직으로 변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공동 대표이사로 새롭게 내정된 고정욱 사장과 노준형 사장이 재무·경영 관리, 전략·기획 등 두 파트로 나눠 전문성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롯데그룹에서는 이영구 롯데 식품군 총괄대표 부회장,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도 물러났다. 지주사·핵심 계열사 부회장이 모두 용퇴하면서 사실상 그룹 부회장단이 해체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들은 젊고 새로운 리더십 중심으로 롯데그룹 내 혁신의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는 이유를 밝히며 용퇴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에서는 그룹 2인자로 불린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뿐만 아니라 이영구 롯데 식품군 총괄대표 부회장,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등 부회장단 전원이 용퇴했다. /더팩트 DB

LG그룹의 경우 2인자인 권봉석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부회장이 유임됐다. 그러나 2018년 구광모 LG그룹 회장 취임 직후 3M에서 LG화학으로 자리를 옮긴 '외부 1호 영입' 기업인이었던 신학철 부회장이 세대교체를 위해 물러났다. 이로써 LG그룹은 부회장 승진자 없이 권봉석 1인 부회장 체제가 됐다. 특히 차기 2인자, 부회장 승진 후보자로 거론돼 왔던 조주완 LG전자 사장도 이번 인사를 끝으로 물러났다. 두 사람의 용퇴로 공석이 된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장 김동춘 사장, LG전자 HS사업본부장 류재철 사장이 채운다.

2인자를 교체하는 전격적인 변화를 가져가지 않더라도, 승진자를 최소화해 부회장단을 축소하려는 기조는 다른 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CJ는 그룹 최초 공채 출신 부회장으로서 CJ제일제당을 이끌었던 강신호 부회장이 물러났지만, 추가로 부회장을 승진시키지 않았다. GS그룹에서는 부회장 승진자 두 명이 탄생했으나, 허용수 GS에너지 사장(왼쪽)과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등 모두 오너가였고, 전문경영인 부회장 승진자는 없었다.

SK그룹에서는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 유일하게 부회장 승진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다만 부회장 승진이 이뤄진 것은 4년 만으로, SK그룹 역시 부회장직을 지속해서 줄이는 추세다. 그룹 2인 자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맡고 있으며, 최 의장은 최근 몇 년간 조직 슬림화를 통한 경영 효율화 과제를 해결 중이다.

부회장단을 줄인 기업들은 내실 키우기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미래 사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젊고 빠른 리더십이 중요시되고 있다"며 "2인자가 사라지고, 부회장단이 축소되는 것은 오너 리더십이 강화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rocky@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