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창원=이성락 기자] "충무공의 정신으로 출항!"(해군·해병대 139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24) 씨가 동기들과 함께 힘찬 구호를 외치며 해군 장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재용 회장 등 삼성가(家)는 해군 장교 임관식에 참석해 '삼성 4세 이지호'가 아닌 '소위 이지호'의 새로운 시작에 대해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보냈다.
28일 오후 1시 30분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지호 씨를 비롯한 제139기 해군·해병대 사관후보생들(89명)의 임관식이 열렸다. 행사에는 임관자 가족들과 해군·해병대 주요 지휘관·참모, 유관 기관 단체, 해군사관생도 등 1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가장 주목받은 참석자는 이재용 회장이다. 그는 오후 1시 15분쯤 지호 씨의 할머니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명예관장, 고모인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과 함께 도착했다. 삼성 내부 행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삼성가가 총출동한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삼성가가 배출한 첫 장교인 지호 씨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으로 보인다.
지호 씨의 어머니인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도 자리했다. 이재용 회장과 다른 구역 가족석에 앉아 아들의 임관을 축하했다. 이재용 회장과 임세령 부회장은 지난 1998년 결혼했고, 11년 만인 2009년 2월 협의 이혼했다. 슬하에 지호 씨와 딸 이원주 씨를 뒀다.
이날 임관식은 홍보·축하 영상 상영, 의장대 시범, 해군 사관후보생 입장, 수료증 수여, 임관 장교 계급장 수여, 임관 선서, 참모총장 축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지호 씨는 후보생 입장 때 어머니를 보며 활짝 웃었고, 이어 할머니와 아버지를 발견, 모자를 가볍게 만지며 반가움을 표했다.
지호 씨는 지난 9월 15일 입대 당시와 비교하면 다소 날렵해진 모습이었다. 11주 동안 3단계로 이뤄진 강도 높은 교육·훈련을 거치면서 몸무게가 줄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호 씨는 기수 대표로 제병 지휘를 하며 후보생 전체를 통솔했다.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지호 씨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중간중간 마른침을 삼키는 모습도 보였으나, 지호 씨의 자세는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임관식 내내 흐트러지지 않았다.
기수 대표로 발탁된 점을 고려했을 때 지호 씨는 훈련 기간 동기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으로 점쳐진다. 또 후보생 생활과 교육·훈련 전반적으로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재용 회장은 아들의 당찬 행보에 자랑스럽다는 듯, 연신 박수를 보냈다. 앞서 이재용 회장은 복수 국적자인 아들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때도 응원과 격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은 임관 장교 계급장 수여식에도 참여했다. 홍라희 명예관장과 함께 직접 연병장으로 내려가 지호 씨에게 계급장을 달아줬다. 지호 씨는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경례 및 임관 신고를 했고, 두 사람은 경례로 화답했다. 이어 홍라희 명예관장은 손자를 꼭 끌어안았다. 이재용 회장은 "수고했다"며 짧은 격려 메시지를 전했다.
임세령 부회장은 멀찌감치 떨어져 이 모습을 지켜봤다. 두 사람이 자리를 옮기자, 아들에게 다가가 임관을 축하하며 대화를 나눴다.
이날 이재용 회장과 임세령 부회장의 직접 대면은 이뤄지지 않았다. 임관식 말미 자리를 옮겨 진행된 139기 기념 촬영도 서로 다른 곳에서 지켜봤다. 이재용 회장은 지호 씨가 동기들과 함께 "충무공의 정신으로 출항"이라고 외치며 해군 모자를 힘껏 던지는 모습까지 지켜본 뒤, 임세령 부회장보다 먼저 자리를 떠났다.
지호 씨는 해군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장교 신분으로 본격적인 군 생활을 하게 된다. 이날부터 3박 4일간 휴가를 보낸 뒤 복귀해 초등군사교육을 거친 이후 부대에 배치될 예정이다. 함정 병과 통역 장교로 근무하는 지호 씨는 복무를 연장하지 않으면 2028년 12월 2일 전역한다.
지호 씨는 해군 명의의 공식 발표를 통해 "고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어려움에 맞서고 이겨내는 마음을 갖게 됐다"며 "해군 장교에 지원한 것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보직에서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도 지난 2014년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자원입대해 소위 임관한 바 있다. 그는 청해부대와 서해2함대 등에서 약 3년 간의 복무를 마친 뒤 2017년 해군 중위로 전역했다.
지호 씨와 민정 씨처럼 대기업 오너 일가가 장교로 자원입대하는 사례는 드물다. 지호 씨와 같이 자기 뜻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병역 회피 논란이 잦은 일부 대기업 자녀들과 대조되면서, 지호 씨와 민정 씨의 결정을 놓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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