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한앤코)가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한앤코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계약 지연으로 발생한 기업가치 하락과 손해를 인정하며 홍 전 회장에게 660억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다만 한앤코로서도 청구액 전부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부분 승소'라는 한계가 남았다.
◆ 법원 "홍 전 회장, 한앤코에 660억 배상해야"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는 27일 "홍 전 회장은 한앤컴퍼니에 660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중 소극적 손해 487억원은 가집행이 허용됐으며, 소송 비용의 5분의 3 역시 홍 전 회장이 부담하도록 했다. 2022년 11월 소 제기 이후 약 3년 만에 내려진 1심 결론이다.
재판부는 한앤코가 주장한 손해 가운데 '소극적 손해'를 우선 인정했다.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됐다면 매매대금을 운용해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홍 전 회장으로 인해 해당 기회가 상실됐다는 것이다. 다만 인정 범위는 최소 상사법정이율인 6% 상당으로 제한됐다. 이를 넘어선 손해는 입증이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적극적 손해'와 관련해서는 계약 지연으로 오너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아 남양유업의 기업가치가 하락한 점을 인용했다. 이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계약 지연에 따른 손해를 어디까지 배상 범위로 인정할지에 대한 '사실상 최초'의 법원 판단이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660억원이라는 절대 금액보다 중요한 건 계약 지연 자체를 배상 대상으로 인정한 판단 구조"라며 "향후 국내 거래에서 매도자 오너의 태도 변화나 시간 끌기 전략의 비용이 훨씬 커지게 됐다. 리스크 프리미엄과 협상력의 무게중심이 바뀌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번 소송의 전제는 2021년 5월 체결된 남양유업 지분 53.08%에 대한 주식매매계약(SPA)이었다. 홍 전 회장이 돌연 계약을 해지하며 주식 양도를 거부하자 한앤코는 계약 이행 소송으로 맞섰다. 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 끝에 공방은 2024년 1월 한앤코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이후 한앤코는 남양유업 지분 52.63%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주식 양도 완료까지 32개월이 걸리며 손해가 누적됐다. 한앤코는 이 기간 남양유업의 현금성 자산이 700억원 이상 감소했도, 광고·판촉비 급증으로 영업이익과 시장 점유율이 악화됐다고 주장해 이번 손해배상 청구가 진행돼 왔다.
◆ 한앤코, 회수율 70% 그쳐…"쉽게 물러설 상황 아냐"
한앤코가 승소하긴 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와는 거리가 있다. 당초 청구액은 500억원이었으나 소송 과정에서 구체적 피해액은 재산정됐고, 한앤코는 936억원으로 배상금을 올렸다. 최종 인정된 금액이 660억원에 그쳤으니 회수율은 약 70% 수준인 셈이다.
또한 한앤코는 홍 전 회장의 아내인 이운경 고문과 손자 홍승의 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는 패소했다. 이들이 주식을 이전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양측 모두 승복하지 않고 항소전을 이어갈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홍 전 회장의 경우, 배상 규모가 막대해 항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지연손해금까지 반영될 경우 실질 배상액은 700억~800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 한앤코로서도 인정되지 않은 약 30%의 손해가 남아 있고, 매매대금 운용 기회 손해가 6%로 제한된 점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1심은 법적 쟁점에 선을 그은 수준이어서 항소심에서 다시 다퉈볼 여지가 있다"면서 "홍 전 회장은 당연하고, 한앤코 측은 운용 기회 상실분을 연 6%로만 인정한 점과 오너 일가 일부에 대한 책임 부정 등을 수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3년 넘게 이어진 소송인 만큼 양측 모두 쉽게 물러설 상황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