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생산적 금융 이중고…은행 CET1 여력, 어디까지


원·달러 환율 10원 오르면 CET1 1~3bp↓
2030년까지 생산적·포용금융 508조 공급·연 20조 집행 시 RWA·CET1 부담 가중

원·달러 환율이 1470원 안팎까지 치솟으며 1500원 선까지 거론되는 고환율 국면이 이어지자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가 보통주자본(CET1) 비율 관리에 총력을 가하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원·달러 환율이 1470원 안팎까지 치솟으며 1500원 선까지 거론되는 고환율 국면이 이어지자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보통주자본(CET1) 비율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2030년까지 총 508조원을 생산적·포용금융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이 더해지면서 현재 규제 기준을 웃도는 자본완충력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가 은행권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1470원대를 돌파하며 7개월 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4일 기준 환율은 장중 1470원대를 넘어선 뒤 1477.1원에 마감했고, 26일에도 1465.6원으로 1400원대 중후반 고환율 흐름을 이어갔다. 시장에선 내년 환율 전망 범위를 달러당 1410~1540원으로 제시하는 등 1500원대 진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고환율은 곧바로 은행 자본비율에 부담을 준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은행이 보유한 외화대출·해외투자 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늘면서 위험가중자산(RWA)이 확대되고, 보통주자본을 RWA로 나눈 CET1 비율은 하락 압력을 받는 구조다. 업계에선 통상 환율이 10원 오를 때 5대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이 1~3bp(0.01~0.03%포인트) 떨어지고, 100원 상승 시 약 0.25%포인트 안팎의 하락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실제 신한금융지주 기준으로 9월 말 대비 환율이 10원 오르면 CET1 비율은 지주 차원에서 약 1.2bp, 은행 기준으로는 3.2bp 낮아지는 것으로 내부 시뮬레이션이 제시돼 있다. 환율이 100원 상승할 때 증가하는 RWA 규모는 파생상품을 포함해 약 4조7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KB금융지주는 현재 기준 환율이 10원 변동할 때 CET1 비율이 2bp 수준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숫자만 놓고 보면 5대 금융지주의 자본여력은 아직 '관리 가능한 구간'으로 평가된다. 5대 금융지주의 3분기 말 CET1 비율은 KB금융 13.83%, 신한금융 13.56%, 하나금융 13.30%, 우리금융 12.92%, NH농협금융 12.34%로, 12.34~13.83% 범위에 분포한다. D-SIB(국내 시스템 중요 은행지주)로 지정된 이들 그룹에 적용되는 보통주자본 규제비율은 최소 4.5%에 자본보전완충자본(2.5%포인트), 경기대응완충자본(1.0%포인트), D-SIB 추가자본(1.0%포인트)을 더한 9.0% 이상이다.

즉 5대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법정 최소요건(9%)과 금융당국 권고 수준(12%)을 3~5%포인트 가량 웃도는 수준이다. 다만 각 그룹이 주주환원 확대를 위해 자체 설정한 내부 관리목표(대체로 13% 또는 13.0~13.5% 구간)에 비춰보면, NH농협금융(12.34%)과 우리금융(12.92%) 등 일부 그룹은 '목표 대비 완충 여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양상이다.

여기에 당국이 주문한 '생산적·포용금융' 확대가 추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생산적 금융과 포용 금융이 제시되면서,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는 2030년까지 총 508조원을 관련 분야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가운데 생산적 금융이 441조원, 포용금융이 67조원이다. 회사별 배정 규모는 KB·신한 110조원, 하나 100조원, 우리 80조원, NH농협 108조원 수준이다.

생산적 금융 공급은 기업대출·모험자본 투자 확대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RWA 증가와 CET1 비율 하락을 수반한다. /더팩트 DB

생산적 금융 공급은 기업대출·모험자본 투자 확대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RWA 증가와 CET1 비율 하락을 수반한다. 하나금융지주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생산적·포용금융에 매년 약 20조원 규모의 자본을 투입하면 RWA가 연간 12조원가량 늘고, 이로 인한 CET1 비율 하락 효과는 약 0.5%포인트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출 성장 및 이익 유입 등을 감안하면 실제 CET1 비율 하락폭은 0.2%포인트 안팎으로 상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KB금융은 그룹 차원의 외환 포지션 노출을 줄이기 위해 환헤지를 강화하고, 신한은행과 우리금융 등은 환율 민감자산을 별도로 관리하면서 CET1 민감도 시뮬레이션을 정례화하고 있다. 하나금융 역시 향후 환율 뿐만 아니라 당기순이익, 자산 성장, 주주환원 등 다양한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본비율을 면밀히 관리할 계획이다.

NH농협금융 역시 향후 5년간 108조원 규모의 생산적·포용금융을 공급하는 'NH 상생성장 프로젝트'를 발표한 가운데, 3분기 CET1 비율이 12.34%로 경쟁사 대비 낮은 구간에 위치해 자본적정성 관리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 상태다. 농협금융은 생산적 금융 계획에 맞춰 자회사별 RWA 한도 관리와 자본확충 방안을 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환율이 단기적으로 더 오르더라도 국내 금융지주들은 충분한 자본 버퍼가 있어 CET1이 급격히 흔들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생산적 금융 확대 국면에서도 RWA 관리를 병행하고 있어 자본비율 방어 여력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5대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현재로서는 규제비율과 당국 권고 수준을 여유 있게 상회하고 있다. 다만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으로 오르고, 생산적·포용금융 집행 속도가 빨라질 경우 △RWA 급증 △CET1 비율 하락 △주주환원·밸류업 계획 조정 압력 등 자본완충력을 시험대에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의 경계가 이어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규제비율과 내부 목표치 사이에 아직 여유가 있지만, 환율이 1500원 안팎으로 한 단계 더 올라가면 CET1 추가 축적 여력이 빠르게 줄 수 있다"며 "생산적 금융과 주주환원을 동시에 가져가려면 대출 성장 속도를 조절하거나 비이자이익을 더 키우는 식의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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